"한국 기초과학 생태계 무너져…줄어든 과제 수 복원해야"
국내 기초과학 연구자, 14일 국회의사당서 성명 발표
과기정통부 "1만 5000개 수준 복원 목표"
정부 기초연구사업 과제 수 추이/그래픽=김지영
국내 물리학계·수학계 등 기초과학 연구자 2200여명이 "기초연구 과제 수 감소로 한국 기초과학이 붕괴하고 있다"며 "기초연구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정부가 시급히 나서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14일 국내 기초과학 관련 학회 협의체 '기초과학 학회협의체'(이하 기과협)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여 이재명 정부에 기초과학 연구생태계 복원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과협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련 부처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기초연구 질적 고도화를 위한 정책방향'(이하 고도화방향)은 학회가 가장 시급히 요청한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기초연구 생태계가 붕괴하기 시작한 건 연구수행의지 인력(연구 과제를 수주해 실질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박사급 이상의 인력)이 과제 수 부족으로 연구 과제를 수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줄어든 기초연구 과제수를 2028년까지 최소 3만개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5월 발표한 고도화 방안에 따르면 정부 R&D(연구·개발) 사업 중 기초연구사업 과제 수는 2022년 이후 꾸준히 줄었다. 2021년, 2022년 당시 1만 5000개 이상이던 기초연구 과제 수는 2023년 들어 1만4000개, 2024년 1만3000개 수준으로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2000개 줄어든 1만1829개 수준이다.
같은 기간 R&D(연구개발) 과제를 수주하려는 연구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전임 및 비전임 연구자 수는 2021년 약 2만7000명에서 2024년 약 5만600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2024년 기준 전임(정규직) 연구자의 수는 이중 절반인 약 2만8000명 수준이다. 하지만 과제 수는 2000개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연구자 간 과제 수주 경쟁이 심화하고, 과제 수주에 실패해 연구에서 이탈하는 인력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13일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가) 양자기술 인력을 양성한다고 하지만, 정작 양자의 기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물리학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 들어 연구 사업이 '수월성', '질적 우수성'에 집중됐다. 학문의 다양성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단기적 성과 내기'를 택한 것인데 이는 공학 기술 육성에는 적합한 방식일 수 있어도 장기적 안목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기초과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기과협은 △소규모 기초연구 과제 수를 늘려 수학, 물리, 지구과학, 화학, 생물 등 다양한 학문이 수혜받을 수 있도록 할 것 △'과학'과 '기술'의 영역을 구분해 각 특성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할 것 등을 주장했다.
내년도 기초연구사업을 준비 중인 과기정통부도 과제 수 부족이라는 실태를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보다 다양한 학문을 지원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과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내년 최소 1만3000여개 기초연구과제는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임 연구자 수가 약 2만8000명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이중 절반 이상이 과제를 안정적으로 수주할 수 있도록 내년 1만5000개 수준까지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편 기과협에는 대한수학회, 한국물리학회, 대한화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지구과학연합회, 한국통계학회 등 6개 단체가 소속돼 있다. 이번 성명에는 각 학회 소속 과학자 2229명이 이름을 올렸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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