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VC도 앞다퉈 일본으로
日, 스타트업에 96조 투자
국내 벤처캐피털(VC)이 일본 스타트업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더디던 일본 기업들이 인공지능 전환(AX)에 나서며 시장이 커진 데다 일본 정부가 창업 지원과 해외 자본 유치에 막대한 정책자금을 쏟으면서다. 일본이 글로벌 벤처 자금을 빨아들여 한국이 아시아 창업 허브 자리를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내 벤처투자사 SBVA는 일본 지식재산권(IP) 엔터테인먼트 기업 우타이테가 진행한 5500만달러(약 780억원) 규모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고 13일 밝혔다. SBVA가 일본 기업에 투자한 건 처음이다.
신한벤처투자는 일본 투자사 글로벌브레인과 조성한 공동 벤처펀드를 통해 일본 온라인 운동 발달 지원 스타트업 파파모에 최근 돈을 넣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일본 증강현실(AR) 안경 스타트업 셀리드가 진행한 750만달러(약 106억원) 규모 자금 조달에 참여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제2의 라인’이라고 불리는 일정 공유 플랫폼 타임트리의 주요 투자자로 나섰다. 이들 투자사는 일본 VC가 운용하는 벤처펀드에 출자자(LP)로 나서거나 공동 벤처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일본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VC는 1순위 해외 투자처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과 미국을 택했다. 벤처투자 생태계 발전이 더딘 일본은 후순위였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스타트업에 10조엔(약 96조원)을 쏟아붓기로 하고 연기금과 민간 은행까지 동원하고 있다. 국내 투자사 관계자는 “지금은 일본 투자를 검토하지 않는 VC가 없을 정도”라며 “심사역들이 매주 일본 투자처를 확인하고 행사라도 열리면 대형 VC가 모두 몰린다”고 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은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일본판 코넥스 시장인 그로스 시장이 잘 형성돼 있어 벤처기업 상장이 쉽다고 평가받는다. VC는 빠른 회수를 기대할 수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내 스타트업을 상대로 일본 상장을 설득하는 VC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국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시아 창업 허브 자리를 일본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벤처투자에서 글로벌 VC의 투자 비중은 2023년 기준 2.1% 수준이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한국에선 외환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펀드 조성 과정이 까다로워 해외 VC가 전용 펀드를 조성하기 쉽지 않다”며 “해외 VC가 투자를 검토하는 국내 기업 영문 정보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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