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 고별 공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
"'동백아가씨' 33주 1등 했어도 소외감"
"애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어필 못 해"
주현미·조항조·정서주·김용빈, 이미자 헌정무대
후배들에게 전통가요 물려주는 대물림
'뽕짝이라는 멸칭'을 '전통가요라는 존칭'으로 바꾸는데 기여
문턱 높던 세종문화회관은 '이미자의 전당' 돼
올해 데뷔 66주년…노래·음반은 은퇴
조언·인터뷰 등은 계속
[서울=뉴시스] 이미자. (사진 = 뉴시스 DB) 2025.04.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동백아가씨'가 33주간 1등을 했어도 전 소외감으로 쭉 보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이렇게 대중들한테 어필을 하지 못하죠. 후배들한테도 얘기를 해줘요. '너희는 외로울 거야'라고요."
영화 '동백아가씨'(1964) 동명 주제곡 '동백아가씨'는 33주 1위를 차지한 대히트곡이다. 하지만 이 곡의 주인공인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84)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직전까지 해당 곡에 대해 가슴 쓰라려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자신의 고별 무대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에서 MC를 본 황수경 전 KBS 아나운서가 "예전에 전축이 있는 집에선 '동백 아가씨' 음반을 다 샀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이렇게 반응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아팠던 기억만 나요. '동백 아가씨'가 크게 히트 해가지고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 생각밖에 안 해요. 1등 했을 때는 너무 바빠 갖고…."
'동백 아가씨'는 크게 히트했음에도 '왜색倭色)'이 짙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한 동안 대중과 격리됐다. 이 곡을 포함 이미자의 대다수 노래는 '뽕짝'이라고 불리며 한동안 멸시를 받았다.
이미자가 1989년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섰을 때도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다뤄졌다. "이미자를 세종문화회관에 세우면 고무신짝들이 많이 들어와 질서가 없어지고 문화를 해친다"가 이유였다.
하지만 이미자는 뽕작이라 불리는 트로트를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66년 지켜왔다. 뽕짝이라는 멸칭을 전통가요라는 존칭으로 바꿔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턱 높기로 소문 난 세종문화회관은 '이미자의 전당'이 됐다. 데뷔 35주년·40주년·45주년·50주년·55주년·60주년까지 5년 주기로 데뷔 기념공연을 모두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역사를 썼다. 그리고 이번 마지막 무대 역시 이곳에서 열게 됐다.
이미자가 이날 홀로 부른 '동백아가씨'는 명불허전이었다. 여든 살이 훌쩍 넘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아하면서 애틋했다. 무엇보다 음정 하나 흔들리는 것이 없었다. 기교 없이 정확히 부르는 노래의 감동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황수경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동백아가씨'를 육성으로 듣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찾아오신 분들도 굉장히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소름이 돋았다"고 표현했다. "선생님께서 오랜 세월 이렇게 외롭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오신 덕분에 우리의 전통 가요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1959년 열아홉 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아씨' 등 히트곡을 포함해 음반 500여장을 통해 2000여곡 이상을 발표했다. '처음'이란 수식어가 가장 많은 '국민 가수'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가수 이미자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가수 조항조, 이미자, 주현미.데뷔 66주년을 맞은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는 다음 달 26일(토), 27일(일) 양일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으로 팬들을 만난다. 2025.03.05. yesphoto@newsis.com
1973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을 위한 최초의 위문공연, 2002년 평양에서 한국 가수 최초 단독 공연 등의 기록을 썼다. 무엇보다 민족의 한과 애환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한풀이'로 통했다. 데뷔 이래 흔들림 없는 창법과 가창력으로 '가장 한국적인 음색'을 들려줬다는 평을 들었다. 2023년 대중음악 가수로는 처음으로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이날 지난 세월을 돌아본 이미자는 "고난도 많았지만 너무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저희 팬 여러분들한테 은혜를 입은 한 사람으로서 그 은혜에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될지…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외에는 더 보태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자의 데뷔 30주년 기념곡이자 그의 노래 인생을 압축한 제목인 '노래는 나의 인생'으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곳곳에 그녀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이 상징화됐다.
동시에 계승식 자리도 겸했다. 이미자의 뒤를 이어 앞으로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갈 가수들이 의기투합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뒤를 이어서 우리 전통 가요의 맥을 이어갈 후배 가수들을 직접 초대했다.
이미자의 솔로 무대와 함께 주현미·조항조·TV조선 '미스트롯3' 진 정서주·'미스터트롯3' 진 김용빈이 이미자의 데뷔곡과 히트곡을 부르는 등 그녀를 위한 헌정 무대도 펼쳤다.
주현미는 '아씨'와 '여자의 일생', 조항조는 '흑산도 아가씨'와 '여로', 정서주는 '눈물이 진주라면'과 '황포돛대', 김용빈은 '아네모네'와 '빙점'을 들려줬다. 조항조가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는 어렵다"고 고백할 정도로,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엔 쉽지 않은 노래들이었지만 이들은 대선배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힘껏 소화했다.
황수경은 '동백아가씨'의 그 유명한 첫 소절 가사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을 인용해 "헤일 수 없이 그 수많은 밤을 우리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로 위안을 받고 힘을 얻으셨던 음악 팬들은 앞으로 어떤 힘으로 버텨야 되나…"라고 말했다.
이미자는 하지만 우아한 전통가요 주자 승계식을 보여줬다. "후세들이 있잖아요. 후세들이 이제 이어 간다는 것에 뜻이 있습니다. 분명히 끝까지 후세들이 잘 이어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자의 마지막 무대라는 소식을 듣고 초대가 영광이면서 동시에 슬펐다고 고백한 조항조는 "감개무량하다. 오늘 누가 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고 겸양했다. "이미자 선생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가수들도 많은데 저를 또 주목해 주셔서… 제가 늘 2등만 살고 있는데 저를 갑자기 1등으로 만들어 주시는 기분이라서 정말 감사드리고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주현미 역시 슬픔에 공감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마음 가득 우리 이미자 선배님의 노래를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자의 노래를 처음 듣고 전통가요에 빠진 정서주는 "제가 원래 꿈이 없던 친구였는데 그때부터 선생님처럼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라는 꿈도 생겼다"고 했다. 또 "오늘 정말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이미자 선생님의 큰 뜻이 담긴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겐 너무나 큰 영광이었고 또 평생 잊지 못할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무대를 계기로 전통가요의 길을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걸어가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가수 이미자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데뷔 66주년을 맞은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는 다음 달 26일(토), 27일(일) 양일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으로 팬들을 만난다. 2025.03.05. yesphoto@newsis.com
이미자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는 김용빈은 그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뒤에서 선생님의 무대 하시는 모습을 보고 약간 눈물이… 정말 평생 제 노래 인생에서 오늘 무대를 잊지 않을 거예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이미자에 대해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미자는 오래도록 전통가요의 길을 걸어왔지만 외롭고 고달픈 일이 많았다고 했다. 자신의 대가 끝나면 전통가요가 사라질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 외로웠다는 것이다.
"저는 사실 언제부터 콘서트를 못하게 되면 그냥 중단하려고 생각했어요. 은퇴라는 말이 너무 극단적인 얘기가 돼서 그런 얘기 하지 않고 '내가 못할 때 되면 그만둬야지'라는 마음을 혼자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제작자가 계셨어요. 그 뜻을 이어받기도 했죠. 우리의 전통가요는 나라를 잃은 아팠던 기억들을 다 노랫말로 표현할 수 있거든요. 이런 걸 이어가는 후배 가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초대에 응해줄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다행이에요. 호호."
이미자는 특히 전통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에 대한 자긍심도 컸다. "전통가요를 잘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발라드라든가 가곡이라든가 다른 분야의 곡들을 충분히 부를 수 있어요. 그러나 다른 분야의 가수는 전통가요를 그대로 못 부른다는 것에 대해 제가 자부하면서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전통가요를 이어가야 되는데… 정말 끊길 것 같은데 다행히 주현미, 조항조 씨가 이것을 이어받아서 이어가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이제 우리 꼬마들(정서주·김용빈)처럼 또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죠. 그러니까 한 세대만 물려주는 게 아니라 쭉 이어갈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마련해 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실제 이날 공연은 이미자 노래를 포함 우리 전통가요의 역사를 압축한 무대이기도 했다. 조항조, 주현미, 정서주, 김용빈이 각각 이애리수 '황성옛터'(1928), 백년설 '귀국선'(1946), 장세정 '해방된 역마차'(1948), 신세영 '전선야곡'(1951)를 이어 불렀는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 동란 등 우리의 가슴 아픈 근현대사가 노래로 스쳐지나갔다. 이미자는 후배가수들과 함께 남인수 '가거라 삼팔선'(1948)을 불렀다.
이미자는 이날 콧물이 나는 등 온전한 컨디션이 아님에도 자신의 독무대에선 전성기 기량을 그대로 보여줬다.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을 시작으로 '황혼의 부루스' '기러기 아빠' 세 곡을 연달아 불렀을 때도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색이 깨끗했다. 황수경은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에 대해 풋풋함과 설렘을 느꼈다고 했다. 공연 내내 스크린엔 이미자의 다양한 과거 모습들이 담겼다.
올해 데뷔 66주년을 맞은 이미자는 애초 데뷔 50주년에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등 이미자의 인생을 압축한 듯한 시인 김소엽의 노랫말이 인상적인 데뷔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있음은'을 공들여 만들었던 이유다. 이미자는 이 곡에 대해 "제 인생을, 삶을 노래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곡이 이날 본 공연의 마지막 노래였다.
황수경은 공연 막바지에 "66년간 선생님이 이렇게 변함없는 모습 또 한결같은 목소리로 우리의 한을 풀어주시고 항상 위로를 해주시고 곁에서 노래를 해 주신 것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미자는 마지막 무대인 만큼 그간 오래도록 자신과 인연을 맺고 도와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마지막 무대를 기념해 의상을 무료 헌정한 지춘희 미스지컬렉션 대표, 머리를 담당해준 신라호텔 유 원장, 메이크업을 맡은 이영희 원장, 이날 내내 무대에서 반주를 한 32인조 안기승 악단 등에게 고마워했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가수 이미자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데뷔 66주년을 맞은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는 다음 달 26일(토), 27일(일) 양일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으로 팬들을 만난다. 2025.03.05. yesphoto@newsis.com
이미자가 거듭 감사를 표한 팬들도 이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60~70대 중장년 층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들은 객석에서 모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젊은 세대의 떼창과는 다른 감흥을 뿜어냈다.
자신의 삶을 대변해서 '여자의 일생'을 참 좋아한다는 70대 김점자 씨는 "이미자 씨와 같이 늙어 와서 무대 은퇴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먼저 들었다"면서도 "이미자 씨 솔로 무대를 더 보고 싶었지만 우아하게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거 같아 참 보기 좋았다"고 했다.
이미자는 이날 전통가요의 무게감에 대해서도 각인시켰다. 자신들의 노래가 따분하다는 것이다.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게 따분하다의 본뜻이지만 가볍지 않게 대한다는 게 속뜻인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이미자는 "정말 트로트를 하는 가수들은 참 힘들어요. 외롭고… 그래서 후배들을 많이 사랑해 달라는 말씀을 거듭 드리는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애이불비(哀而不悲)가 우리네 정서 아닌가. 2시간 남짓한 공연의 앙코르 곡은 이미자의 또 다른 대표곡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이미자는 후배들과 같이 이 곡을 부르기 전 3000석을 가득 채운 팬들을 향해 "약속을 한 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떠나가도록 크게 같이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크게 떼창했고 은퇴 무대는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축복의 순간이 됐다. 해당화가 피고지는 한 이미자의 노래는 영원하리라.
해당 공연은 27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두 공연의 약 6000석은 티켓 예매 오픈 즉시 단숨에 매진됐다. 자식들이 이날 부모를 공연장 게이트까지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는 풍경이 계속 연출됐다.
이미자는 양일 간 무대로 공연, 음반 활동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후배가수들을 위한 조언 등을 위해 방송, 인터뷰 일정 등은 계속 소화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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