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 개미 투자자 표 겨냥… 더 센 법안 들고나와
이재명 제21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 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최근 내놓는 정책은 철저하게 중도·무당층·보수층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 개미 투자자들을 의식해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서울 한강 벨트의 부동산 민심을 겨냥해 상속세를 완화하고, 월급쟁이 중산층을 겨냥해 근로소득세를 낮추는 내용이다.
다만 오로지 득표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경제 활력은 경시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후보는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상법 개정안에 기업의 경영 활동을 더 옥죄는 내용을 추가했고, 상속세 완화를 말하면서도 가업 승계는 ‘부자 감세’로 규정한다. 이 후보의 ‘감세 정책’은 보수 진영의 담론을 가져온 것이 많은데, 정치권 관계자는 “이 후보의 전략은 ‘보수 정책 체리피킹(유리한 것만 챙김)’”이라고 했다.
◇개미 표심 노려 상법 개정안 추진
이 후보는 21일 페이스북에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겠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최근 국회 재표결 끝에 폐기된 기존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을 때는 들어 있었지만 이후 재계의 우려를 반영해 표결 과정에서는 뺐다. 다시 말해 이 대표는 ‘더 세진 상법 개정안’ 추진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이 후보가 이렇게 ‘강공’으로 나오는 배경에는 개미 투자자들의 불만이 있다. 지난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유상증자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고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민주당은 이를 “단순 자본 조달이 아닌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으로 몰아붙였다. 이후 민주당의 압박이 계속되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규모를 줄였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개미들의 표심을 흡수하는 데 일부 성공했다. 작년 말 기준 12월 결산 상장사 주식 소유자는 1410만명이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소액주주의 권익을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장기적 이익을 위해 단기 손실을 감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개미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또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의 규정은 행동주의 펀드들에 경영권을 손쉽게 넘겨줄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상법개정안 추진뿐 아니라 지난해 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코인 과세 2년 유예 등도 개미 투자자 표심을 의식한 조치다. 금투세 대상자는 15만명 정도로 숫자가 크지 않지만, 일반 개미 투자자들도 세금으로 ‘큰손’들이 주식시장을 이탈하는 것을 우려해 금투세에 부정적이었다. 5대 가상 거래소 회원은 1825만명(중복 포함)에 이른다. 코인 투자자 중에는 2030도 많기 때문에 젊은 층 표심 공략에도 유리한 정책이다.
◇한강 벨트 노려 상속세 완화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실망해 민주당 지지를 거둔 유권자들에게도 적극 구애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대표일 때 이미 배우자 공제 한도 등을 적용해 18억원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게 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수혜자들은 주로 서울 한강 벨트에 몰려 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질 때 서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보다 31만766표 적게 받은 게 승패를 갈랐는데, 이곳 표심을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추산하면 전국적으로는 약 115만가구, 293만명이 혜택을 받게 된다. 이들은 보유 주택 합산 공시가격이 6억9000만원 초과 12억4200만원 이하인 경우에 해당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보유 주택 합산 공시가격이 6억원 초과~12억원 이하인 가구는 주택을 평균 1.89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2주택자라는 얘기로, 문재인 정부에서 죄악시하던 ‘다주택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셈이다. 이재명 캠프는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는다”는 기조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이 제안한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도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50%→40%), 대기업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일반 주주 주식 평가액보다 20% 가산하는 ‘최대 주주 보유 주식 할증 평가’를 폐지하는 건 ‘부자 감세’라서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사실상 상속세 최고 세율이 60%에 달하니 차라리 25%인 양도세를 내고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게 낫다고 항변한다. 우량 기업 쓰리세븐, 락앤락, 유니더스 등이 매각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상속세 부담이었다.
◇월급쟁이 세 부담 낮추고 약점 ‘이대남’ 공략도
민주당은 이 후보가 당대표였을 때 소득세 기본공제 금액을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소득세 기본공제가 오르면 과세 대상 금액이 줄면서 세금 부담이 낮아진다.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기본공제를 180만원으로 상향할 때 1126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됐다.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세청 차장 출신 임광현 의원은 “기본공제 금액이 16년째 150만원으로 동결된 것에 비해 같은 기간 근로소득세는 5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에 공제 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이 후보도 지난 2월 페이스북에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 상황임에도,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징병제를 유지하되 전문 병과는 모병제로 전환하는 ‘선택적 모병제’ 도입도 공언한 상태다. 그는 지난 대선 때도 선택적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징집병 복무 기간을 18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모병으로 기술 집약형 전투 부사관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선택적 모병제의 주된 대상은 차기 정부 임기 내 입대할 가능성이 큰 10대 후반 남성이다. 2023년 기준 15~19세 남성은 약 120만명으로, 이들은 곧 유권자가 된다.
☞집중투표제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주당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고,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다. 소액 주주들이 뭉쳐 특정 이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