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MS·아마존 등
고정비용 낮은 빅테크들
매년 천억달러 현금 창출
반독점 규제에 손발 묶여
과감한 M&A 꿈도 못꿔
미국 빅테크가 보유한 '막대한 현금(Big Cash)'이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상위 5개 기업이 5700억달러(약 772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사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알파벳)·메타 등 5개 회사가 보유한 현금 및 단기·장기 투자 금액이 5700억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서 이 다섯 곳 다음으로 현금이 많은 다섯 개 기업의 것을 합친 수치보다 2배 이상 많은 액수다.
거액의 고정 비용이 사실상 없는 이 기업들은 지난해 각각 1000억달러(약 135조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창출했다. 미국 최대 제조기업 엑손모빌의 현금흐름이 550억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두 배에 가까운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주주환원을 하지 않고 대부분 재투자했던 아마존도 최근 수익성이 좋아지면서 현금이 계속 쌓이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해 320억달러의 잉여 현금흐름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현금흐름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같은 현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전 세계 주요 정부가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업 인수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어도비는 스타트업 피그마를 200억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규제에 막혀 실패했다. 아마존도 아이로봇을 17억달러에 사들이려 했지만 역시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무산됐다.
인수가 성사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정부에 대한 로비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는 성사되기까지 거의 2년이 걸렸다. 로버트 시프먼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수석 신용분석가는 "빅테크의 인수·합병(M&A)이 점점 규제당국 반대에 부딪히면서 아마존은 현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선택 폭이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뿐만 아니라 배당을 포함해 보다 공격적인 자본 환원 정책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글이 최근 마케팅 및 광고 소프트웨어 업체 허브스폿을 인수하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WSJ는 보도했다. 이 업체는 구글이 미국 법무부와 반독점 소송을 진행 중인 광고 분야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브렌트 틸 애널리스트는 허브스폿 인수 보도가 나온 후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 거래가 최선의 자본 사용인지 의문"이라며 "반독점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점도 시장에 긍정적이지 않다. 고객 돈으로 자본시장 투자자만 살찌운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해 615억달러(약 83조원), 그전 해에는 590억달러(약 80조원)를 자사주 매입에 썼다.
지난달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법무부는 애플이 지난해 연구개발(R&D)에 지출한 약 300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 770억달러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독점적 지배력을 활용해 수익을 늘리고 이를 주가 부양에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M&A도, 자사주 매입도 어려워지면서 빅테크 기업은 최근 배당을 늘리고 있다. 그동안 빅테크는 성장에 집중하기 때문에 배당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넘치는 현금을 소진할 방법으로 배당을 택한 것이다.
지난 2월 메타는 설립 이후 사상 처음으로 배당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주당 0.5달러의 배당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주당 0.75달러를 배당하고 있고 지난해 금액을 올렸다. 애플도 연간 150억달러를 배당금에 쓰고 있다. 지난해 배당 규모를 소폭 늘렸다.
[실리콘밸리 이덕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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