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위 현장 르포
지난 7일 이민세관단속국(아이스·ICE)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나흘째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이어지고 있다.
“쾅…쾅쾅…”
시위대 해산을 위해 경찰이 발포한 섬광탄 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경찰 헬기의 굉음과 시위대를 응원하는 차량 경적 소리도 쉴새없이 뒤엉켰다. 지난 7일 이민세관단속국(아이스·ICE)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나흘째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은 “아이스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라”는 시위대의 쉼없는 외침과 이에 맞서는 경찰의 실력행사로 밤새 뜨거웠다.
9일 밤 10시(현지시각)가 넘은 시각에도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고 다운타운 곳곳에서 경찰과 맞섰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청 앞에선 길을 막고 선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지금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고무탄을 발사하겠다.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며 위협했다. 시위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렬로 줄을 서 경찰에 맞섰다. ‘펑’ 소리와 함께 발사가 시작되고서야 시위대는 흩어졌다.
지난 7일 이민세관단속국(아이스·ICE)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나흘째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이어지고 있다. 9일 시위대는 오후 내내 연방 기관이 입주한 청사에 집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적 논란을 빚으며 동원한 주 방위군이 이 건물 경계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내내 시위대는 연방 기관이 입주한 청사에 집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적 논란을 빚으며 동원한 주 방위군이 이 건물 경계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존재 자체가 시위대들을 더욱 자극했다. 학교 교사인 존은 한겨레에 “지역 사회를 지키려는 시위자들을 주 방위군이 공격한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트럼프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침략자로 묘사하려고 하지만 진짜 침략자는 주 방위군”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오후 6시께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 등 비살상 탄환을 발사하며 연방청사 광장으로 진입했다. 오후 내내 관망하던 경찰은 이때를 기점으로 시위대를 몰아붙이기 시작해 밤새 대치를 이어갔다.
단속국의 대규모 단속 반대 시위가 장기화되는 건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에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이민자 비율이 35% 가량으로 전국 평균 약14%의 2.5배에 달한다. 이민자 중 서류 미비 이민자도 25~30% 정도로 추정된다. 이민자가 많다보니 시민권자들도 이민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경우가 많다. 이날 집회 중 마이크를 잡은 한 참가자는 “10년 동안 동네 세차장에서 일하던 분이 이번 단속으로 체포돼 사라졌다. 성실한 가장이었던 그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교사인 소피아도 한겨레에 “가족 중 서류미비 이민자가 있다. 집 밖으로 못 나오고 있다. 일터에 갈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이다. 평일이었지만 로스앤젤레스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인 에르난데스는 한겨레에 “리틀 도쿄에 일본 식당이 많은데 주방에서 일하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일터에 나오지 않아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단속국의 목표를 ‘하루 3000명 체포’로 상향 조정했으며, 단속 범위는 산업단지, 식당, 상점 등 일터까지 확대되고 있다. 단속국은 이날 남부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대규모 단속을 벌이며 법원, 도서관, 상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시민들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에 참석한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 강사인 아마루는 한겨레에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인가, ‘백인의 나라’인가를 묻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며 “말로는 ‘불법이민자’라서 단속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합법체류자도 무차별적으로 잡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합법적으로 시민권을 받으려고 법원에 가던 이민자도 잡아간다. 피부색에 따른 단속으로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이민세관단속국(아이스·ICE)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나흘째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이어지고 있다.
텍사스주 달라스에서도 수백 명이 단속국에 맞서 거리로 나섰다. 이날 밤 시위대는 달라스 서부의 마거릿 헌트 힐 브리지를 행진하며 “대규모 추방을 멈춰라”, “이민자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멕시코와 팔레스타인, 미국 국기를 함께 흔들며 연대를 표시했다. 이날 시위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격렬한 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으로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추가로 2000명의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을 투입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하는 등 대응 수위를 한껏 끌어 올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 직면한 단속국 을 지원하라는 것인데,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로스엔젤레스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군 병력은 해병대까지 합치면 도합 4700명에 달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는 혼란을 유발하려고 미국 땅에 4000명의 군인을 보내고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트럼프에게 명분을 줘선 안된다며 거듭 평화 시위를 촉구했다. 그는 “트럼프가 부추긴 혼란을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어리석은 선동가들은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서로를 지키며, 침착하고 안전하게 행동하라”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미 국방부는 연방군인 해병대 약 700명을 로스앤젤레스로 이동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방위군 동원을 넘어 연방 군대를 시위 대응에 투입하는 건 중대한 단계 전환으로 평가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불법적인 주방위군 동원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이날 캘리포니아주가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낸 소장을 보면, 주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지사를 통하지 않고 주방위군을 동원한 것은 법률에 위배되며, 대통령의 권한 밖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정부는 법원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의 주정부군 동원 명령을 무효로 선언하고, 국방부가 이를 이행하는 것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글·사진 로스앤젤레스/김원철 특파원, 정유경 김지훈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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