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 간판 권순우
올 1월 입대 후 국내서 꾸준히 대회 출전
ITF 안동 이어 창원 대회 남자 단식 우승
"정현 형처럼 나 또한 어린 선수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책임감 갖고 나아가겠다"권순우가 2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25 국제테니스연맹(ITF) 오리온닥터유배 창원국제남자테니스 투어대회' 메인 코트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오리온 테니스단 제공
"군 복무는 제게 기회라 생각해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다시 시작할 힘을 기르고 있거든요."
지난 2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25 국제테니스연맹(ITF) 오리온닥터유배 창원국제남자테니스 투어대회'에서 만난 권순우(28·국군체육부대)는 군인 특유의 씩씩함이 묻어났다. 올 1월 군에 입대한 그는 눈에 띄던 노란 머리 대신 검은색으로 변신한 밤톨머리에 '칼각' 경례를 보이며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홀로 투어를 다니며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오랜만의 단체생활은 오히려 활기를 주고 있다. 권순우는 "프로 데뷔 후 매년 혼자 20~25개씩 투어를 다니다 보니 외롭고 고단한 측면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라 굉장히 즐겁다"며 "뭘 하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내게 편안함을 준다"고 말했다. 권순우가 8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25 국제테니스연맹(ITF) 오리온닥터유배 창원국제남자테니스 투어대회' 단식 결승에서 우승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리온 테니스단 제공
그래서일까. 권순우는 직전 ITF 안동국제대회에 이어 8일 열린 창원 대회 결승에서도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ITF 대회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나 챌린저보다 등급이 낮지만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며 "이번 퓨처스는 9년 만이라 긴장도 되고 부담도 있었지만 잘 풀려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프로에 데뷔한 권순우는 최근 10년간 가파르게 성장하며 한국 테니스 간판으로 거듭났다. 데뷔 첫해 1,092위였던 ATP 랭킹을 2021년 최대 52위(연말 기준 53위)까지 끌어올리며 커리어 정점을 찍더니, 2023년 1월 호주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통산 2번째 ATP투어 우승을 달성했다. '한국 테니스 전설' 이형택과 '호주오픈 4강 신화' 정현도 이루지 못한 한국 선수 최초의 성과다.
하지만 커리어 하이는 길지 않았다. 하필 가장 잘 나가던 때 어깨 부상으로 6개월가량을 쉬어야 했고, 복귀 후 성적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복귀전이었던 2023년 8월 US오픈은 1회전에서 탈락했고, 이어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자신보다 랭킹이 500계단 낮은 선수에게 패했다. 아시안게임 당시 라켓을 부수고, 상대 선수의 악수를 거절해 비매너 논란까지 자초했다. 권순우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면서 "너무 잘못된 행동이라 반성도 많이 했고,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다"고 털어놨다.권순우가 2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25 국제테니스연맹(ITF) 오리온닥터유배 창원국제남자테니스 투어대회' 메인 코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리온 테니스단 제공
다만 이 일을 계기로 한층 성숙해졌다. 권순우는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한 번 더 곱씹는 건 물론이고, 경기 전 루틴이 깨져도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시합 전날 8시간 정도 숙면을 취하지 않으면 경기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예민했지만, 지금은 "적게 자도 어쩔 수 없지. 이거 때문에 경기 못하는 건 말이 안돼"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고.
앞으로 군 생활 동안 체력 관리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권순우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연중 기복이 상당했던 것 같다. 1년 내내 체력을 유지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몸 관리에 신경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1997년생인 그는 선수로선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몸 관리만 잘하면 노바크 조코비치(6위·세르비아)처럼 40세까지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30세부터가 시작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목표는 더 높이 올라가는 것. 권순우는 "ATP 랭킹 52위를 찍었던 그때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다"며 "정현이 형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구나'라고 희망을 가졌듯, 내가 잘해야 어린 선수들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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