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서 검사 구관희 역
배우 유해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계 신뢰의 아이콘 유해진이 영화 '야당'으로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야당'(황병국 감독)은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중 마약사범이 건넨 음료수를 마시고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된 이강수(강하늘)가 구관희(유해진) 검사로부터 감형을 조건으로 야당을 제안받은 후 야당이 되어 마약 수사판을 뒤흔드는 스토리를 그렸다. 이강수의 조력하에 굵직한 실력을 쌓은 구관희는 승진을 거듭하고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수사 과정에서 이강수의 야당질 때문에 번번이 허탕을 친 후 이강수와 구관희의 관계를 파고 들면서 세 사람이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얽히게 된다.
지난달 16일 개봉한 '야당'은 개봉 6주차에 327만 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 중이며 박스오피스 3위를 지키며 장기 흥행을 이루고 있다. 극장가가 어렵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야당'이 올해 전체 개봉작 1위를 차지하며 장기 흥행을 할 수 있는 것에는 황병국 감독의 엄청난 취재를 통해 설계된 생생한 시나리오, 실제 그 캐릭터를 살아낸듯한 유해진·강하늘·박해준의 날 것 같은 연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장르와 캐릭터를 막론하고 흥행과 비평 양쪽 측면을 모두 만족시켜왔던 유해진의 작품 선구안은 '야당'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전작 '올빼미'(안태진 감독/2022)에서는 광기에 눈 먼 왕 인조 역을 맡아 극악스러운 카리스마와 극세사보다 섬세한 쫀쫀한 연기를 자랑하더니 '달짝지근해:7510'에서는 엄청난 미각의 제과 연구원 역을 맡아 로맨스와 코믹을 오가며 유해진에게 통하지 않는 장르란 없다는 사실을 펼쳐 보였다. 1000만 영화 '파묘'에서는 베태랑 장의사 고영근 역을 맡아 첫 오컬트 도전에서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장의사 연기를 펼치며 작품이 땅에 발을 붙일수 있도록 신뢰를 더했다.
'야당'에서는 밑바닥부터 올라온 검사 구관희 역을 맡아 욕망을 쫓는 출세 지향형 인간의 끝판왕을 선보였다. 이강수에게 야당을 제안하고 특정 마약범과 조직을 파헤치며 탄탄대로 출세의 길을 걸으며 끝내 거악과 손을 잡는 구관희를 통해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독창적 빌런을 창조시키며 극의 흥미를 극대화시켰다.
배우 유해진 ⓒ하이브미디어코프
- 구관희는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뤄진 전형적 검사들의 모습에서 살짝 벗어나 있더라. 어떻게 설계했나.
▶ '야당'에서 구관희가 야망을 쫓아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야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겉으로 드러내서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우리 영화에 시끄럽고 뭔가를 드러내는 배역은 많이 있지 않았나. 제 연기 목표이기도 한데 어떤 역할은 전형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 있지만 가능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제 목표다. '어떻게 하면 전형적이지 않은 검사를 그릴 수 있을까'가 제 고민 지점이었다. '올빼미'에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왕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매번 그것이 큰 목표 중의 하나다. 전형적 인물로 표현해야 할 때도 있지만 늘 차이를 둘려고 한다. '올빼미'는 특히 연극이나 셰익스피어의 고전 작품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인륜을 어기는 내용 아닌가. 제 목표 중 하나는 보편적이면서도 스페셜한 것을 찾는 것이다.
- 구관희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위로 향하는 검사로 표현됐다. 그럼에도 지독한 결핍을 지닌 인물인데.
▶ 사람 사는 것이 다 마찬가지 아닌가. 배우들의 삶도 비슷하다. '삼시세끼'로 예를 들자면 연출된 것은 거의 없다. 그 곳에서 아침에 운동하고 (차승원과)투닥거린다. 가끔 내 실제 친구들에게 '내 모습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냥 너지'라고 답한다. 그저 직업이 검사고 직업이 변호사인 거다. '소수의견' 때 변호사를 연기할 때도 똑같았다. 극화된 모습이니 한쪽 모습을 더 강조하고 과장도 하지만 왕이라고 해도 살아가는 기본은 똑같다. '소수의견'을 본 변호사들이 '내 선배 중 A씨가 저렇게 살던데 똑같네'라고 느껴주신다면 제 목표는 달성된 거다. 구관희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놓치 않으려는 욕망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밸런스 부분에서 무게를 가지게 한 점이나 뭔가 버라이어티하게 진행되는 전체 구조 안에서 구관희는 꾹꾹 눌러가는 인물로서 표현한 부분이 좀 긍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 극중 구관희는 출세와 권력의 욕망을 지닌 인물로 묘사돼 있다. 구관희의 전사에 대해 어떤 설정들을 했나.
▶ 제가 부수적으로 넣었던 대사들이 있다. 관희와 강수(강하늘)가 족발을 먹으며 하는 대사인데 "임마, 내가 소고기도 보내주고 어쩌고"하는 내용이 있다. 이때 "나도 어렸을 때 엄마가 못이 박히게 '너는 성공해라, 성공해라'하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고 말한다. 그냥 툭 던지는 이야기인데 그런 부분을 제가 보강했다. 관희는 늘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의 어머니가 생선을 팔고 비린내가 나는 채로 집에 돌아오시는데 사실 제 엄마 이야기이기도 했다. 저희 엄마도 '너는 잘 살아야 된다, 잘 살아야 돼'라고 말씀하시곤 했으니까. 이 이야기가 되게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이 이야기를 붙여야지' 했고 인물이 욕망으로 향하게 하는 밑걸음을 만들어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중후반부에 힘을 주게 되는 부분이 '강수야, 높은 데 있으면 두렵지 않냐, 이걸 꽉 잡고 안놓치려고 해야 해'라고 하면서 인물이 빌드업 되어간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딜이 오기 전까지는 이런 삶을 살았던 거다. 그리고 큰 딜이 들어오니 바로 배신으로 가게 되는 거다. 엔딩 부분에서 박수를 치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하는 장면에서 책상 밑에서 기어 가면서 행동한 것도 바퀴벌레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황 감독님께 제가 제안을 드렸다.
배우 유해진 ⓒ하이브미디어코프
- '야당'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 '야당'이라는 신선한 소재도 좋았고 또 지금 영화가 그렇게 많은 상황은 아니다. 예전처럼 몇 개 작품 중 고를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황병국 감독님과 예전부터 관계도 있었다. 그리고 고위직은 시켜줄 때 빨리빨리 하는 게 맞다.(웃음) '부당거래' 때도 인연이 있었고 '무사' 때 조감독을 맡으시기도 했다. '나의 결혼 원정기' 때도 주연 역을 저에게 제안주시기도 했었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 감사했는데 저를 또 찾아주셔서 고맙더라.
- 황병국 감독은 인터뷰에서 과거에 유해진이 '양아치 캐릭터만 많이 들어와서 힘들다'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서 캐스팅했다는 말도 하더라.
▶ 정말 옛날 이야기이긴 한데 처음 연극계를 떠나서 영화 쪽으로 왔을 때 정말 양야치 역할만 들어왔다. 그때 정말 회의감을 느껴서 다시 연극을 했었다. '이발사 박봉구'라는 연극에 참여했었다. 아마 2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주유소 습격사건'을 하고 나서 '신라의 달밤' 이후에 넙치, 꽁치 이런 역할만 들어왔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는 건데 그때는 '내가 이렇게 할려고 영화를 했던 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계 선생님과 극단 단원들과 술자리에 갔는데 TV에서 제가 양아치 역할로 나오는 작품이 방영 중이더라. 오태석 선생님께서 '저런 역할 맡으려고 나갔어'하시더라. 선생님도 속이 많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저를 아껴주시는 분이었고 극단에서 좋은 역할 많이 시켜주고 그러셨는데 속이 상하셨나보다.
- 강하늘과의 호흡은 어땠나.
▶ 강하늘과는 처음 연기를 해봤다. 구김이 없어서 좋더라. 서의로 의견을 확확 이야기 할 수 있고 대답도 클린했다. 보통 꿍하게 대답하는 사람들과는 힘이 든데 하늘이는 정말 군더더기 없을 정도로 쿨했다. 느껴지는 대로 스마트했다. 선배 입장에서는 후배들이 부담을 안가지고 동료라는 생각으로 촬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숙제다. 그런데 하늘 배우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다.
영화 '야당' 스틸 ⓒ하이브미디어코프
- OTT 시리즈에 출연하지 않는 배우로 손꼽히고 있다.
▶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저는 영화가 좋다. 다른 작품과 영화가 같이 들어온다면 영화를 우선시하고 싶다. 배우로서 책임감이 늘 있다. 선배이기 전 배우로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을지 늘 한결 같이 고민이 된다. 신작 영화로 소개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하지만 놓치기 아까운 시리즈라면 꼭 해보고 싶다. 최근 장항준 감독의 권유로 '폭싹 속았수다'를 보게 됐는데 염혜란 씨를 보며 엄청 울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엄청 울었다.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라면 저도 OTT 출연을 고민해보고 싶다.
- 유독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 연극만 하면 어렵다. 젊은 시절 돈도 벌고 예술도 하면서 연기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운좋게 영화로 오고 나서 쭉 해오고 있다. 저에게는 영화가 가장 최적인 것 같다. 저를 지금까지 먹고 살게 해줬고 가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예술적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일방적이지 않게 쌍방향으로 감독님과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갈 수 있지 않나. 이런 작업이 좋다.
- 지난해 청주 '청년극장'에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라 화제에 올랐다.
▶ 청년극장은 제가 처음 연극을 시작한 곳이다. 그곳이 40주년을 맞았고 제가 들어간지 38년이 됐더라. 그동안 고향 청주에 내려가면 청년극장 선후배들과 소주 한잔 마시는 것이 큰 낙이었다. 어느 날 술 한잔 마시다가 40주년도 됐으니 저에게 뭔가 하나 하라고 하시더라. 마침 저에게도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서 연극에 출연했다. 이번 연극은 마치 인터미션 같은 느낌이랄까 지나온 시간도 돌아보고 무대에 대한 냄새도 맡아보고 또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 최근 최고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차승원도 보고 갔더라. 처음엔 아주 작은 역할을 하려고 이야기하다가 유해진이 연극한다고 관심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예의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조금 더 큰 역할을 했다. 어릴 적 한솥밥 먹던 사람들과 하는 연극이니 너무 편하고 좋았따. 끝나고 MT까지 같이 갔다. 서울에서도 연극 제안을 많이 받았었다. 무대를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두려웠는데 고향 청주 무대에서 연극 제안이 오니 두려움이 쑥 사라졌다. 한번 했으니 좋은 제안이 있다면 또 기회가 있지 않을까.
영화 '야당' 스틸 ⓒ하이브미디어코프
- 배우 생활을 해온지 30년이 넘어 40년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 느끼는 인생의 지혜 같은 것이 있다면.
▶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렵다.(웃음) 제 평소 루틴이 뛰는 것인데 갈수록 힘이 들다. 연기도 어려워진다. 영화도 새로운 이야기와 신선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데 그것도 어렵다. 연기는 이전의 것들과 안겹치게 하려니 그것도 어렵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쉬운 게 없다. 여유가 생기지도 않고 어떻게 잘 지켜갈 것인가, 연기와 건강도 어떻게 잘 조절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든다.
- 장항준 감독과 '왕과 사는 사람' 촬영이 한창이다.
▶ 누군가의 페르소나로 살아오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감독님이 없는 것이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지만 다양하게 찾아주시니 또 한편으로 너무 감사하다. 작품을 고를 떄 장르보다는 이야기가 좋은 것을 늘 선택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이 장르를 했으니 다음에는 다른 장르를 고르는 편은 아니다. 지금은 제작이 되는 편수가 줄어서 선택의 기회 또한 줄었다. 작품에 들어가는 걸 매우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곧 영화계에 봄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언젠가 꼭 큰 흐름이 영화계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열심히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극장에 와서 보기를 잘 했다는 느낌을 꼭 가지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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