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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입국 규제 강화가 미국 내 학술대회 개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섞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위키미디어 제공.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던 여러 국제 학술대회가 취소·연기되고 일부는 개최지를 해외로 옮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국 규제 강화에 따른 외국인 연구자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학술대회 참석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미국 비자 발급과 국경 통제가 강화되면서 외국인 참석자들이 미국 내 행사 참가를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캐나다 등으로 개최지를 이전해 참여율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과학계는 물론 정기적으로 학회를 유치해 온 도시와 행사장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시카 레이니시 영국 버벡 런던대 교수는 “학술대회는 과학자들이 국제 사회에 얼마나 활발히 참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며 “지금은 국경이 닫히고 공간이 차단되는 ‘탈세계화’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국제공격성연구학회(ISRA)는 최근 2026년 정기총회를 미국 뉴저지에서 캐나다 세인트캐서린스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 다수의 외국 연구자들이 미국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비교인지학회는 내년 제33회 연례 학술대회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학회 공동 주최자인 캐롤라인 스트랭 캐나다 웨스턴대 교수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참석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북서부인지·기억학회는 이달 초 워싱턴주 벨링햄에서 열릴 예정이던 행사 개최지를 캐나다 빅토리아로 변경했다. 공동 주최자인 스티픈 린제이 빅토리아대 교수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캐나다 학생들이며 국경을 넘어야 하는 불편 때문에 참가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때까지 미국 방문을 피할 예정”이라며 “39년간 거의 빠지지 않았던 심리학회 연례총회도 올해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최지 변경 외에도 여러 미국 내 학술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인지행동치료국제학회는 오는 8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릴 예정이던 학회를 예산 부족으로 취소했다. 미국 정부의 연구비 삭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화산도시학회는 2026년 오리건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회의를 2030년 또는 2032년으로 연기했다.

국제엑스레이(X-RAY)흡수학회는 올해 7월 시카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9차 학회를 전면 취소하고 내년에는 태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학술대회 주최자인 카를로 세그레 일리노이공대 교수는 “초청 연사들이 불참을 통보하기 시작했다”며 “미국에서 이 학회를 다시 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미국 내 공공기관도 행사 취소에 나섰다. 텍사스주 보건부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계자들의 참석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격년으로 열리던 면역 관련 학회를 올해 취소했다.

일부 학회는 미국 내 개최를 유지하면서도 외국인 연구자들을 위해 하이브리드 참석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오는 9월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릴 과학기술사회학회(4S) 50주년 학술대회는 국경 상황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온라인 참여를 허용한다.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입국 규제 강화가 미국 내 모든 학술대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통계는 없다. 미국화학회와 미국물리학회는 정기 학술대회 개최지를 옮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미생물학회도 다음 달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연례 학회를 예정대로 개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장기화할 경우 학술적·경제적 영향이 누적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레이니시 교수는 “학술대회는 막대한 인프라가 필요한 산업이며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며 “미국을 기피하는 흐름은 학회 유치 도시들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라며 “개별 연구자부터 학회, 대학, 도시까지 모두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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