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녹음 파일 증거능력 부정
“학대 입증 방법 여전히 막막”
웹툰작가 주호민 씨와 아내가 지난해 2월 경기 성남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자녀를 정서적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와 관련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웹툰작가 주호민이 자신의 아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자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주호민은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당분간은 조용히 가족의 곁을 지키려 한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보내주신 마음과 응원은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2심 재판부는 학대 여부를 다루기 보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의 법적 효력을 중심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며 “비록 이번 결과는 저희의 바람과는 달랐지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저희 가족은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볼 예정”이라며 “표현이 어려운 장애 아동의 학대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마음은 무겁다”고 했다.
수원지법 형사항소 6-1는 13일 특수교사 A씨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 복지법 위반 등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은 지난해 2월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A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학습반 교실에서 주호민의 아들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다. 싫어 죽겠다. 너 싫다’ ‘나도 너 싫다. 정말 싫어’ 등의 발언으로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주호민은 아들에게 녹음기를 가방에 넣어 학교에 보냈고 녹음된 내용을 기반으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앞선 1심 재판에서는 특수교사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을 증거로 인정했지만 이번 항소심에서는 몰래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한다고 보고 증거 능력을 부정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녹음 파일을 토대로 한 진술 등 2차적 증거 또한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항소심은 판단했다.
교사 단체와 현장 교사들은 ‘몰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된다면 교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등 우려를 표했다. 실제 주호민의 사건이 알려지자 자신의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고 등교시켰다는 글들이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기도 했다.
주호민은 항소심 직후 취재진과 만나 “장애아동이 (학교에서)피해를 봤을 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이번 판결을 통해 느꼈다”며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경기도교육청 고문변호사 또한 취재진과 만나 “(갈등이 있다면)학교 교사와 먼저 대화하고 해결을 해야지, 아동 학대 정황도 없이 이렇게 한 행위(몰래 녹음)에 대해 법원이 경종을 울렸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유죄가 나왔다면 전국 교사들은 몰래 녹음을 당하는 교육 환경에서 애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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