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연 예산 7조 미만은 역부족
조선·물류·관광레저 더해야
글로벌 해양패권 시대 대응
북극항로 준비작업도 병행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기 대선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은 부산 지역 민심에 꽤 반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공약이 없었던 게 아니어서 기시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해수부를 필두로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이 관련 기업들까지 부산으로 이전하는 마중물 역할을 확실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수도권이나 충청, 호남, 대구·경북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은 실속을 못 챙기는 면이 많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때 사업 규모가 큰 공공기관을 끌고 오지 못했다. 부산 이전 대상인 큰 공공기관은 핵심 기능은 수도권에 남겨두고 옮기는 행태를 보였다.
해수부는 어떤가. 여러 정부 부처 가운데 예산 규모는 꼴찌 수준이다. 1996년 8월 처음 설립된 이후 30년이 됐지만 올해 예산은 6조 7816억 원에 그친다. 해수부보다 늦게 생긴 중소벤처기업부 올해 예산이 15조 2920억 원에 이르는 것을 보면 해양수산에 대한 국가 차원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이 야당 후보 입에서 발화된 뒤 지난달 22일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해수부 기능 강화를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과 궤를 갖이한다. 건설교통부 외청이던 해운항만청, 농림수산부 외청이던 수산청에 수로국과 해양경찰청을 더해 만든 해수부가 더 성장하지 못하고 30년의 외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재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건드리고, 대규모 선박 발주를 추진하는 데서 보듯, 지금은 해양패권 쟁탈전이 벌어지는 시대다.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30년간 유지됐던 글로벌 분업과 공급망에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물론 중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 때문이지만, 과거의 자유무역 틀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공급망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해운·항만·물류산업이기에 그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특히 2030년을 전후해 연간 6개월 이상 상업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유럽과 미주로 향하는 마지막 환적 거점으로서의 부산항 위상을 더 강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선박 연료와 선용품 보충, 선원 교체 등 북극해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화물을 환적하고 배와 선원을 채비하는 거점 역할을 부산항이 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바다 없는 세종시에서 한반도 대표 항만 부산항에 오는 기회를 지켜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북극항로 시대의 부산은 수에즈운하로 향하는 길목, 믈라카 해협을 끼고 급성장한 싱가포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국가와 지방 차원의 면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 준비작업을 부산에 이전한 해수부가 주관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해양 금융·보험과 해운 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 부가가치 높은 해운산업이 전통적인 해운항만 산업의 체질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것이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 등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과 물류 산업 관련 업무를 해수부가 함께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해양 치유 등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는 해양관광레저 산업도 해수부가 관할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물류산업은 국토교통부, 해양관광레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맡고 있다. 담당 업무를 맡은 정부 부처는 흩어져 있지만 무역과 공급망의 흐름에서 보자면 대체로 제조사-운송-해운-육상운송-재가공(보관)-유통점-소비자 형태로 흐름이 이어진다. 이 흐름을 여러 부처가 나눠 맡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수출품 99.7%를 해운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해수부가 이 흐름 전체를 관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배를 새로 짓고, 해양 시추를 위한 플랜트를 만드는 일도 결국 글로벌 해운·에너지 시장 흐름과 맞물리는 일이므로 해운을 중심에 두고 국내 제조 산업을 진흥해야 할 것이다.
연간 예산 7조 원도 안 되는 해수부로는 한국의 해양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해양 관련 전·후방 산업을 총괄하는, 강력해진 해수부로 부산에 올 때 그 진정한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다. 전국 최고 속도 초고령 도시가 되어가는 부산을 살릴 마지막 기회이자, 해양패권시대 우리나라의 살길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대선을 앞두고 부산이 챙겨야 할 실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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