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고양종합운동장서 내한공연…8년 만에 두 번째
'빌리브 인 러브(BELIEVE IN LOVE)' 강력
5만명 운집…총 6차례 공연하며 30만명 모객 예상
[서울=뉴시스] 콜드플레이. (사진 = Anna Lee 제공) 2024.09.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이재훈 기자 = 응원봉 대신 자이로 밴드, 망원경 대신 필름을 덧댄 종이 안경. 종이 안경을 쓴 순간 공연장엔 하트 뿅뿅이다. 자이로 밴드에서 새어 나오고, 각종 조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번질 때마다 하트 모양이 공중에서 떠다녔다. 맞다. 사랑은 믿어야 한다. 공연 마지막에 등장한 문구 '빌리브 인 러브(BELIEVE IN LOVE)'처럼.
세계적인 브릿팝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가 16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친 '라이브 네이션 프레젠츠 콜드플레이 :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딜리버드 바이 디에이치엘(LIVE NATION PRESENTS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DELIVERED BY DHL)'을 접하고 문득 깨달았다.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음악에서 배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림 기법들로 이날 공연을 정리해볼까. 연출적인 측면에선 점묘화, 음악적인 측면에선 판화, 메시지적인 측면에선 소묘에 가까웠다.
우선 좋은 공연 연출은 취향을 타기보다 관객을 바로 인식하게 만든다. 초반 '하이어 파워'를 부를 때부터 자이로 밴드 사용은 심상치 않았다.
수많은 작은 점들로 정교하게 그림을 표현하는 점묘화처럼, 물 흐르듯 채도·색채 원근법을 구사하며 콘서트장에서 새로운 색채 경험을 부여해줬다. 팔의 확장인 응원봉이 일사분란함을 보여준다면, 손목에 차 팔에 좀 더 밀착된 자이로 밴드는 5만여 관객들의 각각 움직임에 따라 좀 더 유연해 출렁임을 빚어냈다.
특히 '옐로'를 부를 때 노란점들은 제주의 유채꽃 밭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이 세월호 11주기였던 만큼 노란 리본이 생각나기도 했다. 8년 전 같은 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첫 번째 내한공연 이틀째 무대에서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 추모했던 콜드플레이는 이날 별 다른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노란 불빛만으로도 위로를 줬다. 이렇게 뭉클한 연출은 공연 내내 이어졌다.
[서울=뉴시스] 콜드플레이. (사진 = ©Anna Lee 제공) 2024.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와 함께 월드 투어에서 음악적 측면은 각 지역마다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고양 세트리스트는 올해 앞서 인도 뭄바이, 홍콩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공연 세트리스트와 거의 비슷하다. 판에 그림 등을 새긴 뒤 잉크 등을 칠해 종이나 천에 찍어낸 판화 같은 셈이다.
하지만 판화는 이 틀을 짜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동반한다. 틀에 같은 그림이 새겨지더라도 어떤 잉크나 물감을 칠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이 된다. 열정적인 한국 관객이라는 생동감이 넘치는 물감을 만나, 이 세트리스트는 볼록과 오목을 오가며 입체감을 형성했다. 특히 관객을 무대 위로 초청해 추천곡으로 진행돼 매번 노래가 달라지는 '송북(songbook)' 코너에선 '업&업(Up&Up)'을 불렀다.
보컬 크리스 마틴이 관객들이 플래카드 등에 적어온 메시지를 읽고 그 중 마음에 와 닿은 글귀를 적은 팬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순서다. 이날은 해당 곡을 부르기 위해 입대를 연기했다는, 형광색 패딩 안전 조끼를 입고 온 젊은 남성이 마틴의 가창 파트너로 낙점됐다. 마틴은 '마이 유니버스'를 협업하는 등 콜드플레이와 절친한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들도 군 복무 중이라며 이 남성을 반가워했다. 마틴은 '마이 유니버스'를 부르기 직전엔 정국, 제이홉, 진, 뷔, RM, 슈가, 지민 등 멤버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방탄소년단에 대한 애정, 우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마틴은 이 순서에서 자신들이 무려 8년 만에 내한하게 된 이유를 묻는 팻말에 "한국 밴드들이 저희보다 더 잘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했다"면서 "4년 전 방탄소년단과 작업을 위해 잠깐 한국을 찾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K팝 간판 걸그룹 '트와이스'가 스페셜 게스트로 나와 사전 무대를 예열한 점도 한국적 색채가 더해진 순간이었다. 트와이스는 전 세계를 도는 스타디움 아티스트답게 30분남짓한 시간에도 무대 장악력을 보여줬다. '위 프레이'에선 깜짝 등장해 콜드플레이 멤버들과 협업하기도 했다.
마틴은 또한 "한국어가 조금 서툴러도 이해해주세요. 여러분과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라며 우리말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콜드플레이. (사진 = ©Anna Lee 제공) 2024.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콜드플레이의 공연이 특히 인상적인 건 잠언이 인위적으로 녹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곳곳에 자연스럽게, 공학적으로 배치된다. 특히 사물의 형태와 명암을 알게 해주는 소묘 같아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게 만든다. 공연 초반과 중간에 등장하는 영상에 해양, 공기, 야생화, 환경법 등 환경 지키기와 관련된 모든 걸 아우르는 건 물론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반입을 금지하고 500㎖ 이하 재사용 가능한 물병만 반입을 허용하는 등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방점을 찍었다. 다소 불편이 따를 수 있는 공지였다.
하지만 탄소 소비가 많아 환경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동안 월드 투어를 지양하기도 했던 이 팀은 공연수익을 환경을 위해 기부하고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으로 우리 삶 전반을 환기하게 한다.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자이로 밴드 역시 분리수거를 한다. 관객들이 여기에 협조하는 걸 유도하기 위해 나라마다 반납율을 공지한다. 한국 팬들은 소셜 미디어 등에 100%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격려했다. 콜드플레이는 잔디 보호를 위해서도, 완충재 등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다. 인종은 물론 퀴어 등 성별에 차별 없이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한 번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등장했다. 중동 분쟁이 악화되는 시점에서 팔레스타인 태생의 칠레 싱어송라이터 엘리아나(Elyanna)가 오프닝 무대에 이어 트와이스와 함께 '위 프레이' 무대에 선 것도 의미가 컸다. 마틴은 공연에서 공연 연출뿐 아니라 메시적인 측면에서도 모두가 함께 하는 '원 팀'을 강조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콜드플레이가 2008년 내놓은 정규 4집 '비바 라 비다 오어 데스 앤드 올 히스 프렌즈(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수록곡인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는 한국 팬들에게 특별한 곡이다. 이날 역시 전주부터 성스러운 고양감에 떼창이 터져나온 이 곡은 한 때 세상을 다스렸던 사람에 대한 노래.
2017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탄핵정국 중 광화문광장 등에서 울려퍼지며 한국에서 '탄핵 찬가'로 통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는 이날 이 곡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탄핵으로 대통령이 없는 두 시절에만 내한한 콜드플레이는 대한민국 평행이론을 완성한 뜻밖의 요소 중 하나가 됐다. 8년 전 내한 당시 국내 언론과 만났던 콜드플레이 멤버 윌 챔피언(드럼·코러스)은 당시 이 곡에 대해 "힘이 있는 사람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혁명에 대한 노래다. 세계에서 불려지고 강력하게 사용되는 게 영광스럽다.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힘든 상황과 공포가 있어도 삶을 껴안고 나가라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서울=뉴시스] 콜드플레이. (사진 = ©Anna Lee 제공) 2024.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콜드플레이 공연은 이처럼 세상의 모든 문장이 제자리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대중적 설득력을 잃지 않는 숙고해야 할 메시지가 조화를 이룬다. 놀이 공원 야간 퍼레이드를 방불케 하는 '섬싱 저스트 라이크 디스(Something Just Like This)' 무대, 플로어 뒤편에 마치 섬처럼 놓인 두 번째 서브 무대에서 들려준 서정적인 앙코르 등 모든 게 형식, 내용의 균형을 이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공연장을 오선지로 삼고 화려한 폭죽과 불꽃놀이로 밤하늘을 캔버스로 삼는 이들의 화법은 날이 갈수록 노련해지고 있다.
이날 관객 수는 스탱딩 약 2만명, 지정석 약 3만명 등 5만명이 운집했다. 그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콘서트를 연 스타들의 콘서트 수용인원은 3만명 안팎이었는데, 콜드플레이의 국내 인기를 새삼 실감케 했다. 콜드플레이는 18·19·22·24·25일에도 같은 무대에 오른다. 총 여섯 차례 공연으로 30만명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내한공연 중 최대 규모로 최다 회차, 최다 관객 기록이다. 트와이스는 모든 회차에 게스트로 동행한다. 엘리아나는 22일까지 게스트로 나서고, 이후엔 'Z세대의 록스타' 한로로(한지수)가 오프닝 게스트를 책임진다.
콜드플레이에게 그런데 규모는 공연을 거들 뿐이다. 이들의 콘서트를 접하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 생긴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음악에서 많이 깨닫는 사람들이라는 걸 인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 자신 혹은 누군가를 계속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와 우리는 사랑하면서 맞선다. 인생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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