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되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오는 6월3일 '대선-개헌 동시투표'를 제안했습니다.
정치권의 오랜 숙제, 헌법 개정이란 화두를 다시 던진 것입니다.
그는 “1987년에도 빠른 시간 합의가 됐다”며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선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우 의장도 “대선 후 논의하자”며 제안을 철회했습니다.
6월3일까진 6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대선과 개헌 동시투표가 물리적으로 가능한 제안이었는지 JTBC가 팩트체크해봤습니다.
우원식 의장은 지난 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대선과 개헌 동시투표를 제안하며 “최소 38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38일이면 헌법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법에 따른 절차에 맞춰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우 의장이 주장했던 38일의 시간을 법이 정한 절차와 근거를 통해 따라가보겠습니다.
개헌 국민투표에 필요한 최소 법적 기간 〈출처 : JTBC 팩트체크부〉
우리 헌법엔 개헌을 위해선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제130조 제2항).
법제처는 국민투표를 '국민이 직접 정책결정에 참여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0년 법제처 발간 헌법주석서 4권).
국회가 일반 법률을 만들고, 바꾸고, 없앨 수 있지만 헌법만은 그 주인인 국민의 허락을 직접 받는 절차인 것입니다.
여야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오늘(4월9일) 개헌안이 발의되면 국민들에게 알리는 절차를 가장 우선적으로 밟게 됩니다.
헌법 제129조 〈출처 : 국가법령정보센터〉
최소 20일 동안 어떤 내용을 바꾸는지 등에 대한 공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헌법 제129조)
발의 당일부터 따지면 4월29일까지가 알리는 기간입니다.
물론 최소한이고, 공고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개헌의 방향과 내용에 따라 기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회는 최소 공고 기간이 끝난 날(4월29일) 본회의를 즉시 열어 개헌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합니다.
이 때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헌법 제130조 제3항)
개헌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비로소 국민투표 절차에 진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즉시' 투표를 실시할 순 없습니다.
국민투표법 제49조 〈출처 : 국가법령정보센터〉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도 미리 알려야 합니다. 최소 18일동안 공고를 통해서입니다.(국민투표법 제49조)
4월9일 발의를 기준으로 5월16일에 국민들이 개헌 여부에 대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루의 빈틈도 없이, 그리고 하나의 변수도 없이 절차가 진행될 경우입니다.
물론 투표만 한다고 헌법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국민 절반이 투표하고, 그 중 절반이 찬성해야 합니다.(헌법 제130조 제2항)
우 의장의 말, 38일 만에 국민투표는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개헌이 이뤄졌던 시기엔 어땠을까요.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 신속히 진행했던 1987년엔 발의(9월18일)부터 공고(9월21일), 국회 표결(10월12일), 국민투표(10월27일), 공포(10월29일)까지 42일이 걸렸습니다.
당시 국민투표법은 투표 공고를 7일만 하도록 했습니다.
지금보다 11일이나 적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중대한 변수가 빠졌습니다.
우선 개헌특위를 통해 개정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헌을 위해선 국회법 제44조에 따라 여야 모두가 참여하는 개헌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합니다.
실제 개헌특위가 운영된 건 1987년과 2017년 두 차례 뿐이었습니다.
1987년 8월 31일 권익현 민정당 대표(앞줄 왼쪽)와 이중재 민주당 대표(앞줄 오른쪽)가 개헌 협상 합의문에 서명했다. 〈출처 : 중앙DB〉
개헌까지 성공한 1987년엔 개헌특위 구성부터 개헌안 최종 공포까지 4개월이 걸렸습니다.
개헌 논의가 끝내 무산됐던 2017년의 경우 여야가 특위 구성을 위한 첫 논의를 시작한 날(2016년 11월28일)부터 첫 공식 회의가 열리기(2017년 1월5일)까지만으로도 38일이나 소요됐습니다.
또 여야 합의(3분의2 이상의 동의)라는 높은 허들도 넘어야 합니다.
대선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현재(9일)에도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이 모두 다릅니다.
우 의장은 개헌으로 권력구조 개편을 꼭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논쟁의 여지가 크고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대신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과 대통령의 계엄 요건 강화에 대한 개헌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차를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입니다.
헌법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받을 시간이 촉박합니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을 볼 때 6월3일 대선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진=JTBC 자료화면〉
헌법을 바꾸기 위해선 국민투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민투표법에 따라서 이뤄집니다.
그런데 지금 현행법상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의 근거가 돼줄 법률이 없습니다.
2014년 7월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이 국민투표를 하지 못하는 조항(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2014년 헌재 국민투표법 재외국민 위헌 결정문
헌재는 이듬해(2015년) 말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하라고 했지만, 국회가 손을 놓으며 현재는 효력을 잃었습니다.
또 2019년 18세로 하향 조정된 선거권 연령도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선거를 실시하려면 선관위가 투표를 할 사람들의 명단, 즉 선거인명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관련 법이 없어 현재로선 국민투표를 위한 선거인명부를 만들 근거 법률이 없는 것입니다.
팩트체크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해보니, 투표일 50일 전인 4월15일까지 국민투표법이 개정·공포돼야만 선거 실무의 준비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선관위는 또 “선거인 명부 작성 외에도 투표용지 제작과 시스템 반영, 해외 공관으로의 배송 등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8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가 추진된 바 있었습니다.
당시 선관위는 민주당 측에 “안정적인 투표 관리를 위해 투표일 최소 50일 전까지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개정·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결국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국민투표가 무산됐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기사 검증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jazzy-background-202.notion.site/JTBC-1659eb1c5fb380599e2debacf70a776a?pvs=4
(자료조사 및 취재지원 : 박진희 및 조벼리)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