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5살 때 아버지 잃은 김옥자 할머니
AI로 복원 “옥자야 많이 기다렸지?”
한덕수 총리 “비극 또 없도록 전력”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김옥자 할머니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재현한 자신의 아버지 영상을 보고 손녀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옥자야 아버지다. 오래 기다렸지?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버지가 안아보자.”
소 여물 주러 나갔다가 군경에 살해 당한 아버지가 AI(인공지능)을 통해 70여년 만에 딸 앞에 나타났다. 제주4·3 당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은 김옥자(83) 할머니 얘기다.
행정안전부와 제주도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거행했다. 올해 슬로건은 ‘불어라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다.
4·3희생자 추념식 화면에서 김옥자 할머니가 AI로 복원된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송은범 기자]
이날 추념식에서는 4·3희생자 유족인 김옥자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다. 배우 고두심이 사연을 소개하고 손녀 한은빈(17) 학생이 편지를 낭독했다. AI로 복원된 희생자가 출현한 뒤 가수 인순이가 ‘아버지’ 를 불렀다.
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겨울 당시 5살이었던 김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군경을 피해 제주 곤을동 마을로 피신했다. 피신 다음 날 김 할머니의 아버지가 소여물을 먹이기 위해 나간 후 연락이 끊겼다. 몇 달 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군경에 의해 머리뼈가 훼손된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시기 김 할머니는 3살 난 남동생까지 잃는 비극을 맞았다.
추념식장 영상 속에서 아버지 비석 앞에 선 김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가 날 불러도 모를 거고, 내가 아버지를 부르고 싶어도 (얼굴을) 몰라 부르지 못한다”고 흐느꼈다.
그러자 화면에는 들판 위에서 도포를 입은 김 할머니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얼굴은 유족과 주변인의 증언 등을 통해 복원된 것이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옥자야, 아버지여(다), 하영(많이) 기다렸지? 이래(이리) 오라(와라). 우리 똘(딸) 얼마나 커신 지(컸는 지) 한 반 안아 보게(보자)”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추모객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이날 추념사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늘 우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제주에서 76년 전 무고하게 희생되신 수많은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모였다”며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실제 추가 진상조사를 2025년까지 마무리하고, 트라우마 치유센터·국제평화문화센터 설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사말에 나선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는 국가폭력에 의한 통한의 역사를 화해와 상생으로 극복해 냈다”며 “긴 어둠을 이겨낸 4·3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씨앗으로 뿌려져 미래에 안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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