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매체, 미 CBS ‘60분’·독 슈피겔 공동취재
음향 노출 뒤 현기증…미 정보기관 “적대국과 무관”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 건물. 아바나/AP 연합뉴스
해외 주둔 미국 외교관과 정보요원, 그들의 가족 등 1천여명이 시달린 것으로 보고된, 원인 불명의 이상 증상인 ‘아바나 증후군’에 러시아 정보기관의 특수 부대가 연루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러시아는 즉각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반박했다.
라트비아의 러시아 전문 매체 ‘인사이더’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 공동으로 벌인 심층 취재 결과, 아바나 증후군이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산하 29155부대가 개발한 무기의 공격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부대는 외국에서 암살, 파괴 공작 등의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바나 증후군은 2016년 5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주재하던 미 국무부 관리들과 중앙정보국(CIA) 요원, 그들의 가족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상을 호소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이상한 소음 등을 들은 뒤 현기증, 두통, 피로감 등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쿠바에서 이 증상이 처음 확인된 이후 다른 나라에 주재하던 미국 관리 등 약 1천여명이 비슷한 증상을 겪은 것으로 보고됐다.
인사이더는 러시아 쪽 문서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29155부대 소속 고위 인사들이 ‘비살상 음향 무기’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거나 특별 승진한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 내부 문헌에 따르면 이 무기는 공격 대상의 두뇌에 이상 증상을 유발하는 ‘음향 또는 전파를 기반으로 한, 지향성 에너지 장치’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인사이더는 해외 주둔 미국인들이 아바나 증후군을 호소하던 시점에 29155 부대원들이 인근에서 활동한 기록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 증상이 쿠바 아바나에서 보고되기 2년 전인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미 영사관 직원 한명이 강한 에너지 빔 같은 것에 노출돼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때로부터 몇 달 뒤다.
이 매체의 보도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여러 해 동안 조사한 뒤 내린 결론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적했다. 지난해 3월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한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아바나 증후군을 호소한 1천여명에 대해 몇 년 동안 조사한 결과 이 증상이 적대국의 에너지 무기 공격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학자들도 이 증상이 집단적인 심인성 질병 또는 집단적 히스테리일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인사이더의 보도 이후 미 국방부는 지난해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국방부 고위 관리가 아바나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부 대변인은 원인에 대해서는 미 국가정보국(DNI)에 문의하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국가정보국은 지난달 11일 발표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이 증후군에 적대국이 관련되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러시아는 이 보도가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는 새로운 주제가 전혀 아니다. 여러 해 동안 이른바 ‘아바나 증후군’을 언론들이 과장해서 보도해왔으며, 처음부터 러시아 연계 의혹이 제기됐었다”며 “그러나 이런 근거 없는 비난을 뒷받침할 설득력 있는 증거는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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