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토 정상회의 참석한 軍관료,
원인불명 질환 ‘아바나 증후군’ 고통
2016년 쿠바에서 美외교관 최초 보고
이후 70개국, 200명 이상이 고통 호소
전문가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美정보당국 “명백한 증거 발견 못해”
러시아 “또 근거없는 비난 시작됐다”
[사진=로이터연합]
해외에서 근무하는 미국의 외교관, 정보 에이전트, 국방부 요원은 종종 야밤에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 현기증을 호소하며 코피를 쏟는다. 2016년 최초 보고된 이후 미 주요 당국자 수백명이 피해를 호소한 원인 불명의 고통, ‘아바나 증후군’이다.
유독 미국 당국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 일각에서는 아바나 증후군이 러시아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나 세력이 자행한 전자기파 공격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미국 정보당국이 명백한 증거를 찾은 적은 없다.
미국 당국자들이 겪는 원인 모를 증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지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국방부 고위 관리가 ‘아바나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아바나 증후군은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미 외교관들이 증상을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두통,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코피를 쏟는 일도 있었다. 외상없이 고통이 계속돼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이후 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 등 전 세계 70개국에서 근무하는 미국 외교관이나 정보요원, 국방부 소속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서 유사한 사례가 수백건 보고됐다. 미국은 2021년 기준 200여명이 전현직 당국자들이 아바나 증후군이나 관련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와 긴밀했던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증상이 최초 보고된 점, 미국의 관리들만 유사한 고통을 호소하는 점 때문에 러시아 등이 전자기파 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러시아가 최근 극초단파로 인간의 뇌를 공격하는 무기를 개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난해 미 국가정보국(DNI)에 보고된 총 153쪽 분량의 아바나 증후군 관련 전문가 소견 문건의 결론은 ‘적어도 아바나 증후군이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문건에 따르면 일부 징후나 증상은 일반적이지만 몇몇 핵심 특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전문가들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증상”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환경적·의학적 상황들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외부적 자극에 의해 발생한 현상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자기 에너지, 특히 무선주파수 대역의 펄스 신호에 의한 증상이라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 미 CBS 방송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산하 특수부대인 29155부대가 아바나 증후군과 연관돼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CBS는 러시아어 독립 온라인 매체 디 인사이더를 인용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아바나 증후군이 처음 보고되기 2년 전인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미 정부 관리를 겨냥한 ‘에너지 빔’ 형태의 공격이 있었다. 그는 의식을 잃고 외상성 뇌손상 진단을 받았는데, 이후 공격에 가담한 자로 추정되는 29155부대 요원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미 정보기관들은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은 수년간 조사를 실시했지만 증후군이 러시아 등 국가의 공격 때문이라는 물증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등이 연루되지 않았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러시아는 의혹을 부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수년간 아바나 증후군이라는 주제가 언론에서 언급됐고 대부분은 러시아에 대한 비난과 관련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이러한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발표한 사람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진실은 미궁 속이다.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는 지난 2월 ‘2024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외국의 적이 아바나 증후군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밝히면서도, 이 같은 평가에 대한 미 정보기관의 신뢰 수준은 다양하다고 밝혔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