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은 최소 규모”…尹, ‘정치 유불리’ 보다 ‘대의’ 강조
‘총선위기론’ 발등에 불 떨어진 韓 “숫자 중요한가” 제동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2000명은 최소한의 증원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
"숫자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의대 정원'을 두고 정부 여당이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으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정부를 향해 타협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역풍을 감수해서라도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총선 위기론'에 휩싸인 국민의힘 지도부는 '의정 갈등'이 장기화될 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尹 "국민 건강 걸린 문제…유불리 따질 수 있나"
윤 대통령은 이날 53분간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증원 2000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정부 출범 후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앞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2023년 11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다. '의료 대란'을 둔 갑론을박이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계속되자, 윤 대통령이 직접 관련 입장을 표명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 이탈이 7주째 접어들면서 의료 대란 우려가 커지는 것과 관련해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다만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통계와 연구를 모두 검토하고, 현재는 물론 미래의 상황까지 꼼꼼하게 살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총파업을 언급한 의료계를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도 없이 힘으로 부딪혀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법 집단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 제안과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는 것을,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대한의사협회 등을 중심으로 의료 개혁 백지화,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 등을 요구하는 데 대해 "(의협은) 심지어 총선에 개입하겠다며 정부를 위협하고, 정권 퇴진을 운운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태는 대통령인 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적 유불리'는 의대 증원의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를 어떻게 대통령이 유불리를 따지고 외면할 수 있겠느냐"며 "역대 어느 정부도 정치적 유불리 셈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방치되어,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일 부산 영도구 남항시장 앞에서 조승환(부산 중구영도구)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韓, 정부에 우려 전달…與일각 "尹 탈당해야" 비판도
윤 대통령의 담화에 야권과 의료계는 냉소적인 입장을 냈다. 민주당은 "국민 목소리를 경청해 전향적 태도 변화로 의료대란을 막고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역시나 마이동풍(馬耳東風) 정권임을 확인시켜주는 담화"(신현영 대변인)라는 논평을 냈고, 새로운미래 광주 광산을 후보인 이낙연 공동대표는 "적극적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 일방통행의 전형"이라고 비꼬았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은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은 건 국민의힘의 반응이다. 통상 윤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 두둔했던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정 갈등'과 관련해선 정부와 날을 세우는 모습이다. '2000명'이라는 숫자에 정부가 집착해서는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여당 선대위에서 제기됐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날 오후 부산 남구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남구살리기' 지원유세에서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입장을 고수하는 데 대해 "숫자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 국민은 정말 의사 증원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반면에 지금 상황이 조속히 해결되는 것도 바란다"며 "저희는 국민이 원하는 그 방향대로 정부가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취재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지난 주말 간 '의료계와 의제 제한 없는 대화를 시작해달라'는 요구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이날 담화가 한 위원장과의 '소통의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담화 직후 발표된 한 위원장의 반응을 고려하면 의정 갈등을 두고 정부와 여당이 합치된 해결법을 찾지 못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급기야 '총선 위기론'을 우려하는 여당 후보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거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함운경 후보는 이날 윤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직후 "국민의힘 당원직을 이탈해 주기를 정중하게 요청한다"며 윤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 요구했다. 당에서 대통령을 향해 탈당을 요구하는 발언이 나온 건 윤 대통령 임기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의정 갈등'과 이로 인해 파생된 '당정 갈등'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두고는 정치권 내 의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날 대통령의 담화가 총선의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에 의정갈등과 관련한 '민심'이 이미 선반영되어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다만 의정 갈등을 두고 당정이 계속 파열음을 낸다면, 당의 총선 전략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의대 증원 타협이 총선의 변수일 순 있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이 안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 의사를 접을 수도 있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효과는 계속 깎여나갈 것"고 진단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막판에 의대 증원 타협에 성공하면 중도층 일부가 동요할 수 있다"며 "문제는 시점이다. 총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마음을 굳힌다. 늦어도 선거 일주일 전까진 타결을 이뤄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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