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완연한 봄을 맞아 이번 주 '하루천자'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은 식물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아피스토'의 에세이 <처음 식물>이다. 아피스토는 수초와 열대식물, 정글플랜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정성 들여 키우고 있는 '식물집사'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출판편집자이기도 하다. <처음 식물>은 어쩌다 보니 사무실 공간의 절반을 식물로 채워버린 저자가 식물을 키우면서 겪은 일과 식물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 보면 식물 키우기라는 정적인 취미가 사실 가장 동적인 치유이자 위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글자 수 993자.
식물이 처음 온 날, 택배상자를 열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와~. 너 진짜 멋있다!"
이 식물은 가만히 있어도 역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름은 필로덴드론 파스타자눔(Pilodendron Pastazanum)입니다. '파스타자눔'은 1970년대 에콰도르 파스타자 주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인데, 이름이 어렵다보니 식물집사들 사이에서는 그냥 '짜넘이'로 통합니다.
그런데 저를 감동시킨 짜넘이가 새 화분에 옮긴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잎이 누렇게 뜨면서 시들어갔습니다. 순간 저의 얼굴도 함께 누렇게 떴지요.
(중략)
식물은 처음 새 집으로 이사를 오면 한 번씩 몸살을 앓습니다. 새 집에 오기 전까지 농장이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자란 이유도 있겠지만, 물맛도 다르고 볕도 다른 새 환경에 적응하려니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새집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식물호르몬 중에는 에틸렌 호르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식물이 상처를 입거나, 가뭄이나 산소 부족, 냉해 등 다양한 스트레스 환경에 놓이면, 에틸렌을 방출하는 것이지요. 식물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서 꽃과 과실을 빨리 맺음으로써 후대를 남기려는 진화 전략이기도 합니다.
짜넘이도 택배상자에 실려오는 동안 에틸렌을 내뿜으며 생존의 몸부림을 쳤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은 후 새 식물을 들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식물을 바로 분갈이하지 않고 반그늘에 일주일 정도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치르듯 저만의 식물보험을 들어놓습니다.
바로 식물의 처음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입니다. 식물의 가장 건강한 때를 기억하기 위해서지요. 어느 날 갑자기 건강하던 식물이 마르거나 누렇게 뜨면, 그 식물이 처음 들어온 날의 사진을 찾아봅니다.
'아, 이땐 이 잎이 없었구나.'
'그땐 반점도 없었네?'
이렇게 비교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식물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초심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저의 유일한 식물보험입니다.
-아피스토(신주현), <처음 식물>, 미디어샘, 1만7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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