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처음 열었을 때, 베일 속의 나라 인도는 당대 최고의 교역품인 향신료 등 자원이 넘쳐나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도는 더 이상 미지의 가능성만을 품은 나라가 아니다. 재작년 인도가 쏘아올린 찬드라얀 3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했을 때, 전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인도를 잠재력만 가진 나라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시대착오다.
인도는 인구 14억 명으로 이미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국가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인도의 평균 연령은 28세로, 수억 명에 달하는 청년층은 거대한 경제 성장 동력 그 자체이다. 매년 150만 명 이상의 공학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 중국을 단연 압도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인도 출신임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인도는 더 이상 ‘미래의 나라’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현재의 강국’이다. 인도의 경제 규모는 구매력 기준 세계 3위로, 올해 GDP는 2015년의 두 배를 넘길 전망이다. 이는 세계 경제 질서를 뒤흔들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급속한 성장이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느냐, 아니면 뒷짐만 지고 바라보느냐는 지금의 결단에 달려있다.
인도의 혁신 역량은 IT와 바이오, 우주항공 분야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특히 인도는 AI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중 다음으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배출 중인 나라가 바로 인도다. 구글, 아마존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인도에 R&D 센터를 설립해 현지 인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스타트업들도 과감히 인도 시장을 두드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표적 예가 핀테크 기업 밸런스 히어로다. 이 기업은 인도 스마트폰 이용자의 대다수가 선불 요금제를 사용하면서 겪던 불편함을 정확히 파악해 간편한 잔액조회 앱으로 인도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나아가 방대한 고객 데이터와 AI 기술을 결합해 금융 거래가 없는 인도의 서민층에게도 소액 대출을 제공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라는 시장이 가진 잠재력이 기술과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과학기술 협력을 위해 우리가 인도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 가진 제조 역량과 첨단 기술이 인도의 풍부한 인적 자원,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결합하면, 두 나라는 기술패권 경쟁에서 새로운 차원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해 설립 15주년을 맞는 KIST 한-인도협력센터는 단순한 물리적 거점을 넘어 대인도 과학기술 협력을 이끄는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센터는 양국 간 혁신적인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인도의 우수한 인재를 적극 유치하여 미래의 과학기술 성과를 함께 키워갈 계획이다. 또한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겪는 기술적 문제를 적시에 지원하는 맞춤형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한 행동이다. 인도는 이미 잠재력을 넘어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 위에 우리가 함께 설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다. 상호호혜적 파트너십을 토대로 인도와 함께 혁신을 이루고, 그 열매를 함께 나누는 미래가 눈앞에 와 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해 대항해 시대를 활짝 열었듯, 기술 패권의 시대, 대한민국의 활로가 과학기술향 인도 항로에 있을지 모른다. 과학기술로 연결된 인도와의 새로운 동맹,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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