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과학기술 인재 전쟁 해법은?' 포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기한림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현·최형두·조인철·최수진·황정아 의원과 19일 국회에서 개최한 포럼 '국경 없는 과학기술 인재 전쟁 해법은?'이 열린 모습. 과총 제공
"학생 시절 우러러보던 석학이 오늘날 한국에서 자리를 못 찾고 중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20년 후 제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석학 대우 문제는 정년 나이의 과학자뿐 아니라 40대인 우리 세대 연구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기술이 미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오늘날도 유효한 말인지 의문입니다."
국내 주요 과학상을 휩쓸며 차세대 과학자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김근수(42)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의 작심 발언이다. 정년을 맞이한 석학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문제가 "미래의 내 모습 같다"며 정부가 과학기술인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기한림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현·최형두·조인철·최수진·황정아 의원과 19일 국회에서 개최한 포럼 '국경 없는 과학기술 인재 전쟁 해법은?'에서 이같이 말했다. 포럼은 지난 5월 13일 개최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해법 모색’에 이어 열리는 두 번째 행사다.
포럼에는 이원홍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인재정책센터장, 유필진 성균관대 기획조정처장이 발표하고 이어지는 토론에 이들과 함께 최해천 서울대 석좌교수, 김 교수, 홍용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조길원 포스텍 석학교수, 어윤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AI인재양성실장, 김견 현대차그룹 경영연구원 원장이 참석했다.
김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낸 과학자들은 중국 헤드헌팅 업체에서 연봉 7~8억원, 수십억원의 연구비 등 조건이 담긴 제안을 받는다"며 "중국에서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자들을 적극 영입하려는 전략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영웅 같은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20년 뒤의 제 모습 같고 그때도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봐 걱정된다"며 "큰 성과를 이룬 석학에게만이라도 그에 맞는 처우를 제공해 젊은이들이 과학자를 실컷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분자 분야의 국내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조길원 포스텍 석학교수는 "현재 포스텍에서 최장 70세까지 정년 나이를 연장해주고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유니버시티 프로페서'로 지정돼 정년이 지났음에도 연구 중이다"며 "대학이 해외로 유출되는 인재를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재원이 부족하더라도 대학이 먼저 나서 인재 유출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먼저 컨센선스를 모아야 제도권에서는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고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전략에 대한 고민도 이뤄졌다. 이원홍 KISTEP 인재정책센터장은 "R&D 투자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국내 이공계 인력을 늘릴 수 있다는 기존 인력 양성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어떤 분야, 어떤 수준의 인재가 필요한지 진단한 뒤 인재 유입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필요한 인력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4개 과학기술원이 AI 융합 분야(AI+S&T) 국내·외 최고 수준 박사후연구원 400명을 파격적인 처우로 채용하기 위해 시작한 '이노코어(InnoCORE)' 사업에 대한 보완점도 언급됐다.
김 교수는 "국외 인재 영입에 파격적인 조건을 거는 정책을 너무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면 국내 과학자 처우 개선에 소홀해질 수 있다"며 "젊은 세대한테 먼저 외국에 자리를 잡고 좋은 대우를 받고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까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도 "이노코어 사업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인재가 연구만 하지 않고 연구기관이나 기업의 일자리까지 연계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현재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이 한국에 큰 폭으로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유 중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 의견은 소수다"고 설명했다.
김견 현대차그룹 경영연구원 원장은 "자율주행, AI 등 영역은 현대자동차 입장에서 굉장히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에 잘 해내가려면 과학 인재가 든든하게 뒷받침 돼야 한다"며 "과학기술과 산업이 잘 융합돼 과학기술 생태계를 혁신함으로써 국가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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