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중심의 특이점 가설…대체 이론 계속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
英 연구진 '정적 공간' 대안 제시…5차원 우주 가정 등 한계점 많아
태양 질량의 수백만배에서 수십억배에 달하는 초거대 블랙홀 상상도.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블랙홀의 중심엔 무엇이 있을까."
100여년 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이후 생겨난 이 질문은 여전히 현대 물리학에 남겨진 난제다.
14일 스페이스닷컴 등 외신과 학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 시대부터 블랙홀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추정된 '특이점(Singularity)'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이론들도 여전히 기존 물리 법칙을 완전히 만족시키진 못한다는 반론에 부딪히며 아인슈타인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블랙홀과 그 중심의 특이점이라는 개념은 1916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이 곡률을 가진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질량과 에너지의 존재로 인해 시공간이 휘어지거나 변형된다는 것이다. 이는 물체의 질량이 커져 중력이 강해질수록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진다고 봤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같은 시공간의 곡률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점을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점은 질량이 무한히 밀집되는 곳으로, 그로 인해 밀도가 무한대로 치닫게 돼 시공간이 무한히 왜곡되고 붕괴되는 지점이라고 정의된다.
문제는 바로 이 '무한대'라는 개념이다. 특이점에서는 수학적으로 물리량이 발산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물리 법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블랙홀의 경계를 정의하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안에서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심부에서는 시공간의 좌표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로 인해 블랙홀 내부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개념은 지난 100여년 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왔다. 물리학의 목표는 자연 현상을 보편적인 법칙으로 설명하는 데 있는 만큼 기본 법칙이 깨지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에 물리학계에서는 이같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특이점이라는 존재를 제거하거나, 아예 대체하는 새로운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빛을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의 모습 상상도.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올해 2월 영국 더럼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로비 헤니거 연구팀이 특이점을 제거하려는 새로운 접근 이론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Einstein Field Equations)'을 수정한 이론을 내세웠다. 이 이론은 시공간의 곡률이 극단적으로 커지는 조건에서는 중력이 다르게 작용한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블랙홀 중심의 특이점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제시했다.
그 골자는 블랙홀 중심에 특이점 대신 '강하게 뒤틀리는 정적인(Static) 영역'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이론이 수학적으로 정합성을 갖췄고, 시공간 곡률이 극한으로 치닫는 구간에서 새로운 중력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블랙홀 내부를 무한한 밀도의 점이 아닌 유한한 구조의 공간으로 바꿔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모델 역시 과학계의 단일 해답으로 받아들여지기엔 이르다. 미국 뉴헤이븐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니코뎀 포플라우스키는 이같은 이론이 3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연구진의 이론이 '5차원 우주'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의 모든 실험과 관측 결과는 인간이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구성된 4차원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차원을 가정한 물리이론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추가 차원의 존재는 현재까지 실험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또 연구진이 블랙홀 내부를 '정적 공간'이라고 가정한 것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해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는 시공간이 동적으로 변화하며, 결코 정적인 상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 자체가 기존 중력이론과 상충되면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신규 이론은 특이점을 제거하기 위해 장 방정식에 '무한히 많은 수의 항(terms)'을 인위적으로 추가하고 있다. 이는 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보다는 수학적인 실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포플라우스키의 주장이다.
그간 학계에서의 특이점 제거 시도들은 대부분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려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을 기반으로 이뤄져왔다.
'끈이론(String Theory)'이 가장 대표적인 시도다. 우주의 기본 입자를 점이 아니라 '진동하는 1차원 끈'으로 가정해 중력과 양자역학의 통합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끈이론은 추가 차원뿐 아니라 '초대칭 입자'들의 존재까지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너무 많다는 한계를 지닌다.
포플라우스키는 블랙홀 내부와 특이점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에서 중력파를 예측한 이후, 지구에서 중력파가 실제로 검출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며 "블랙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내기까지 앞으로 수십년이 더 걸릴 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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