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치 3.7조, 계속가치 2.5조
티몬처럼 회생 인가 전 M&A 택해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뉴스1
이 기사는 2025년 6월 12일 16시 3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홈플러스가 3개월여 동안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며 기업회생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보고서에서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계속기업가치보다 1조원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조사위원의 권고에 따라 ‘회생계획 인가 전 M&A’에 착수하기로 했다. 보통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나올 경우 파산하거나 이번 홈플러스의 경우처럼 회생계획 인가 전 M&A를 택한다.
변수는 홈플러스가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선순위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메리츠가 반대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리츠가 반대하더라도 법원이 회생을 강제 인가할 가능성도 있다.
◇ 인수자 찾아서 증자한 뒤 무상감자할 듯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홈플러스의 지정 조사위원 삼일PwC는 조사보고서 설명회를 열고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가 더 높게 나왔으며 13일 법원에 인가 전 M&A를 신청하겠다”고 채권단에 밝혔다. 이날 설명회는 삼일PwC가 지난 3월부터 석 달간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한 뒤 진행됐다.
삼일PwC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3조7000억원으로 계속기업가치 2조5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은 6조8000억원이고 부채는 2조9000억원이어서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은 약 3조9000억원인데, 잔존가치 등을 고려해 할인한 뒤 세금 및 정리 비용까지 제하면 약 3조7000억원이 된다고 본 것이다.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청산가치는 기업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을 모두 팔고 채무를 갚은 뒤 남는 금액을 뜻한다. 계속기업가치는 회사가 영업을 지속한다는 전제하에, 앞으로 벌어들일 미래의 현금흐름을 추정해 현재 가치로 할인한 금액이다.
일반적으로는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를 뛰어넘어야 회생의 명분이 선다. 그러나 청산가치가 더 높은데도 회생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채권자들이 청산의 현실성이 낮다고 판단하거나 회생 시 정산받을 수 있는 금액이 청산해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크다는 희망이 있을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홈플러스는 회생 계획 인가 전 M&A를 추진하기로 했다. 홈플러스의 새 주인을 먼저 찾은 뒤 투자 계약을 맺고 매매 대금을 변제 재원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이후 홈플러스는 인수자와 함께 회생계획안을 만들어 채권단에 보고하게 된다. 즉 법원 보호 아래서 구조조정과 매각을 한 번에 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최근 티몬은 청산가치(136억원)가 계속기업가치(-925억원)보다 높게 나온 상황에 회생 계획 인가 전 M&A를 추진해 매각에 성공했다. 조사위원도 “청산하는 것이 계속기업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회사는 결국 회생을 택했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 오아시스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번에도 법원의 허가가 떨어진다면, 홈플러스는 새 인수자를 찾아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의 방식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게 된다. 기존 주주의 지분을 매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투자금은 회사로 유입되고, 홈플러스는 이를 채무 변제에 사용할 수 있다. 이후 기존 주주의 주식을 무상 감자하는 식으로 M&A를 마무리하게 될 전망이다.
◇ “메리츠, 새 정권에서 대량 실업자 나오는 것 부담될 것”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이 법원의 인가를 받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은 선순위 채권자(회생담보권자)인 메리츠다. 메리츠는 지난해 5월 홈플러스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차환) 당시 단독 주선사로 나서 1조2000억원을 대출해 줬다. 금융그룹 전체에서 메리츠증권의 익스포저가 6551억2000만원으로 가장 크고, 캐피탈과 화재가 각각 2807억7000만원씩 부담했다.
메리츠 입장에서는 청산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투자금 회수 방안이다. 조사위원도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1조원이상 높다고 판단한 만큼 청산을 주장할 당위성도 충분한 상태다.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에 돌입한다면, 메리츠는 회생 기간 동안 담보권 행사를 못 하게 된다. 돈을 상환받기까지 최장 10년을 기다려야 할 가능성도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95조에 “회생 계획에 의하여 채무를 부담하거나 채무의 기한을 유예하는 경우 그 채무의 기한은 담보가 있는 때에는 그 담보물의 존속기간을 넘지 못하며, 담보가 없거나 담보물의 존속기간을 판정할 수 없는 때에는 10년을 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메리츠가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에 반대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청산 시 점포를 매각해서 매장 문을 다 닫아야 하는데, 이 경우 대량 실업자 양산의 책임을 메리츠가 떠안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히 최근 정권이 바뀐 상황인데, 홈플러스가 영업을 지속하지 못해 수십만 명이 직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메리츠가 그 부담을 떠안고 회생계획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담보권자인 메리츠가 회생계획에 반대하더라도 법원에서 강제 인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보통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계획안이 인가되려면 회생담보권자 4분의 3 이상, 회생채권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회생담보권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생채권자 조의 찬성이 있다면 인가될 수 있다. 실제로 작년 중순 범현대가 건설사인 에이치엔아이엔씨와 중견 건설사 대창기업의 경우 재판부가 회생 계획의 강제 인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회생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회생담보권자가 반대하고 회생채권자 중 일부만 찬성한 건에서도 강제 인가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며 “회생계획안 강제 인가는 법원 재량이 큰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홈플러스의 관리인을 맡고 있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대표는 조사위원의 보고서와 달리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높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시하기로 했다.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이번처럼 회생 기업이 조사위원과 다른 의견을 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계속기업가치가 더 높다는 점을 강조해야 M&A 추진 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의견서를 내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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