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세전쟁·동북아안보 등
한일 협력할 이슈들 늘어나
양국관계 ‘정치 이용’ 안돼
넘지말아야 할 ‘선’ 지키며
신뢰 높이고 협력 강화해야
일본 내각부가 작년 9월 조사한 ‘외교에 대한 여론’에서 한국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는 비율은 52.8%였다. 1년 전에 비해 6.9%포인트 높아졌고,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일본은 부품·소재 수출규제로 맞서며 ‘역대 최악의 관계’라고 평가받는 2019년에 비하면 두 배 수준으로 오른 수치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호감도 변화도 이런 흐름과 비슷하게 변해왔다. 2020년 하반기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했던 필자는 당시 양국의 싸늘했던 분위기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 이후 한일관계가 다시 개선되는 과정을 현지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여행가려는 사람들이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은 부부처럼 중요한 관계’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일 양국이 경제·외교·안보 등에서 서로 필요한 위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특히 최근 정세가 그 정도를 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나 미군 재편을 비롯한 동북아 안보, 동아시아 정책 등을 대응하는 데 있어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 또 그동안 한·미·일 협력을 위해 미국이 한국과 일본 간 중재 역할을 많이 해왔지만, 트럼프 정권에서는 이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 만큼 한일 양국의 자체적인 관계 구축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새 정부의 첫 인선을 발표한 뒤 “지난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결 방안을 그대로 진행할 것인가”라는 일본 언론의 물음에 “한일관계도 실용적 관점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인 올해,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3년 만에 새 정권이 출범했는데, 요즘 일본 지인들로부터 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이 크게 늘었다. 그 질문들에는 한일 관계가 다시 엄혹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깔려 있다. 역대 최악이던 당시의 한일 관계가 한국에도 부담이었지만, 일본 입장에서도 다시는 재연되지 않았으면 하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가 총리관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일본 언론 등은 ‘과거 이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강경 발언을 했다’며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대통령이 선거운동이나 취임사 등에서 강조한 실용주의가 한일 관계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동안 서로가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어왔고 이는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악용을 떠나, 국익 차원의 실용주의에서 ‘서로 도움되는 건 협력하고 피할 건 피하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한일 관계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실용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에서는 우선 양국이 서로에 대해 신뢰의 메시지를 주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6월에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있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행사에 양국 정상이 참석하거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달 주요 7개국(G7) 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등 한일 정상이 마주칠 행사에서 ‘양국의 협력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또 한일 관계를 도약시킨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할 수 있는 ‘한일 수교 60주년 공동선언’ 등도 모색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실용적 양국 관계가 구축되려면 선을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외교에서는 서로가 감내할 수 없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이 무엇인지는 양국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정서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역사나 영토와 관련한 망언·도발 등을 감내하기 어렵고 일본은 정부 간 약속·합의를 깨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 한다.
서로 더 필요해진 한일이 ‘역대 최악의 관계’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실용적인 한일 관계를 제대로 구축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김규식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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