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K-배터리의 찌그러진 현주소 1편
전기차 시장 꾸준한 성장세
효과는 중국 기업들이 잠식
2년 전 K-배터리 위상 급락
中 시장 제외해도 마찬가지
올해 점유율 격차 더 커질 듯
# 중국 배터리 기업이 성장하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드넓은 중국 시장이 있는데, 중국 기업이 성장하는 건 당연하다. 시장을 제대로 보려면 중국을 뺀 마켓을 분석해야 한다."
# 그렇다면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선 어떨까. K-배터리는 이전처럼 '독보적인 위상'을 지키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비非중국 시장에서도 K-배터리의 입지는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K-배터리의 문제는 이런 냉정한 시각에서 풀어야 한다. 더스쿠프가 K-배터리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봤다. 'K-배터리 찌그러진 현주소' 1편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중국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관점➊ 세계 시장 점유율 =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K-배터리의 위상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4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하이브리드차 포함)에 탑재된 배터리 총 사용량은 308.5GWh였다. 지난해 1~4월(220.1GWh)보다 40.2% 늘었다.
이대로라면 2021년 이후 둔화한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증가율도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참고: 2020년 148GWh였던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2021년 304GWh로, 105.4%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 수치는 2022년 67.4%, 2023년 38.1%, 2024년 27.2%로 꾸준히 하락했다.]
그런데 국내 배터리 3사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올해 1~4월 10위권 내 제조사별 세계시장 점유율(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기준)을 살펴보니,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ㆍSK온ㆍ삼성SDI)의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4.6%포인트 하락한 17.9%에 그쳤다.
LG에너지솔루션(3위)과 SK온(4위)은 시장 성장세에 맞춰 지난해보다 배터리 사용량이 각각 16.3%, 24.1%로 늘긴 했지만 전체 평균(40.2%)에는 크게 못 미쳤다. 삼성SDI(7위)는 배터리 사용량 자체가 11.2% 줄어들었다. 배터리 사용량이 줄어든 배터리 제조사는 삼성SDI와 파나소닉뿐이었다.
반면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같은 기간 10위권 내에 속한 중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61.9%에서 65.4%로 상승했다. 배터리 사용량 증가율을 봐도 CATL(1위) 42.4%, BYD(2위) 60.8%, CALB(5위) 21.4%, Gotion(6위) 82.8%, EVE(9위) 69.4%로 대부분 전체 시장 증가율(40.2%)보다 높았다.
통계만 놓고 보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크기가 커졌는데,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커진 파이를 독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자 일부에선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전기차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건 중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 기준 시장 점유율을 지역별로 보면, 중국이 65.9%로 가장 높았다. 유럽(17.6%)과 북미(10.4%) 시장을 합친 것보다 2.3배나 많이 점유했다. 이런 중국 시장에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로컬기업들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다. 사진은 브라질의 BYD 배터리 생산 공장.[사진|뉴시스]
■ 관점➋ 非중국 시장 점유율 = 문제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지위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느냐다. 지난 5월 SNE리서치가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기준 비非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과 시장 점유율 통계를 보자.[※참고: 앞서 언급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올 1~4월 전체시장 기준이다. 비非중국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을 따로 분석하기 위해 기준을 달리 했다.]
먼저 비중국 시장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증감 현황이다. 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중국 시장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총 98.4GWh로, 지난해 1분기(77.7GWh)보다 26.5% 증가했다.
비중국 시장 평균보다 배터리 사용량이 높은 제조사는 CATL(1위ㆍ35.5%), SK온(3위ㆍ35.5%), BYD(6위ㆍ104.7%), Gotion(7위ㆍ108.2%), CALB(8위ㆍ81.8%), 테슬라(10위ㆍ447.9%) 등이었다.[※참고: 테슬라의 경우 지난해 1분기 배터리 사용량이 0.3GWh에 불과했다. 따라서 올해 1분기 배터리 사용량이 1.9GWh밖에 되지 않았지만, 증가율은 굉장히 높게 나타났다.]
나머지는 비중국 시장 증가율(26.5%)에도 못 미쳤다. LG에너지솔루션(2위)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율은 15.3%에 그쳤고, 삼성SDI(4위ㆍ-16.9%)는 이번에도 역시 파나소닉(5위ㆍ-6.3%)과 함께 마이너스였다.
10위권에 포함된 5개의 중국 기업 중 증가율이 낮은 곳은 파라시스(12.9%)가 유일했다. 지난해 8월 인천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사고를 낸 벤츠 EQE 모델에 탑재된 그 배터리 제조사다. 삼성SDI는 비중국 시장에서 그런 파라시스보다도 신규 수요가 적었던 셈이다.
이번엔 비중국 시장 점유율을 보자. 같은 기간 기업들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은 대부분 상승했다.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지 않은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파나소닉, 파라시스뿐이었다. 국내 기업 중 시장 점유율이 상승한 곳은 SK온이 유일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40.3%였고, 지난해 1분기(45.7%)보다 5.4%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시장을 포함한 세계시장의 국내 배터리 3사 시장 점유율 하락폭인 4.6%포인트보다 더 크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 하락세가 비중국 시장에서 더 가팔랐단 얘기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면, 비중국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성장의 과실을 독식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 합계는 42.0%로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 합계보다 1.7%포인트 높다. 중국 시장의 포함 여부와 무관하게 K-배터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물론 중국 기업들이 원래부터 시장의 강자였던 건 아니다. 불과 4년 전인 2021년만 해도 K-배터리는 시장의 리더였다. 당시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기업별 점유율을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35.2%로 1위, SK온이 11.1%로 4위, 삼성SDI가 9.3%로 5위였다. 국내 3사가 비중국 시장의 절반 이상(55.6%)을 독식한 거다.
CATL의 시장 점유율은 14.0%로 2위였지만, 1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의 격차가 두배 이상이었다. 10위권 내 중국 기업 4곳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18.0%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작 2년 만인 2023년 CATL은 시장 점유율 27.5%로 LG에너지솔루션을 앞질렀고, 10위권 내 중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31.9%로 급상승했다.
[※참고: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10위권 내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2024년까지만 해도 각각 43.6%와 35.0%로 한국 기업이 앞섰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 합계는 한국 기업이 40.3%, 중국 기업이 42.0%다. 따라서 올해 국내 배터리 3사는 시장 점유율 합계 경쟁에서도 중국에 밀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처럼 K-배터리의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한 이유는 뭘까. 이 얘기는 'K-배터리 찌그러진 현주소' 2편에서 다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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