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뱀파이어' 엔하이픈, 미스터리한 벙커 공간으로 초대
'성장하는 늑대인간' 앤팀, 역동적인 콘서트 무대로 초대
하이브 보이그룹 '앤(&)'·웹툰 '다크문' 세계관 공유하는 형제팀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5.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의도엔 뱀파이어, 잠실엔 늑대인간.
7일 서울 최고 기온이 28도로 비교적 높았지만, 오싹했던 이유다. K팝계 뱀파이어·늑대인간으로 각각 통하는 그룹 '엔하이픈'(ENHYPEN)·'앤팀(&TEAM)'이 이날 서울 도심에서 신출귀몰(神出鬼沒)했다.
엔하이픈과 앤팀은 'K팝 최대 기획사' 하이브(HYBE)의 레이블들인 빌립프랩과 YX레이블즈에 각각 속해 있다. 그런데 두 팀은 형제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하이픈은 2020년 엠넷 '아이랜드((I-LAND)'를 통해 탄생했고, 현재 북미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K팝 보이그룹 중 한 팀이다. 일본 기반의 앤팀은 YX레이블즈(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앤 오디션 - 더 하울링 -'을 통해 결성됐다. '아이랜드'에 출연했던 케이(K)·니콜라스(NICHOLAS)·의주(EJ)·타키(TAKI)가 주축 멤버로, 엔하이픈을 잇는 하이브 '앤(&)' 세계관의 확장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엔하이픈엔 하이픈(-)이 서로 다른 단어를 연결해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는 문장부호인 것처럼, 연결로 서로를 발견해 함께 성장한다는 뜻을 담았다. 앤팀은 팀 이름자체가 연결(&)이다.
두 팀은 또한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다크 문(DARK MOON)'의 서사에도 엮여 있다. '다크 문: 달의 제단'이 엔하이픈, '다크 문: 회색 도시'과 앤팀과 연관돼 있는데 두 이야기는 접점이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두 팀이 서울에 동시에 있던 이날 또 다른 교차점이 생긴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 마술이에요."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5.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블랑시'를 상징하는 대사 중 하나다.
엔하이픈이 최근 발매한 미니 6집 '디자이어 : 언리시(DESIRE : UNLEASH)' 역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엔하이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깊어진 사랑에 잠재된 욕망을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젊음의 충동적인 탄성력을 그린다.
엔하이픈은 물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그리는 몰락하는 욕망과 다른 매혹적인 '하이틴 욕망'을 다룬다. 하지만 이 팀이 현실이 아닌 마술적인 세계를 원하다는 점에서 희곡으로부터 가져올 맥락적 장치는 있다.
글로벌 오디오·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가 엔하이픈가 손잡은 팝업 공간 '메종 엔하이픈(MAISON ENHYPEN)이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벙커 역시 마술 같은 신비로움에 방점이 찍힌 공간이다.
1976년 말 혹은 1977년 초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다. 북한과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당시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 등 정부 VIP 대피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서울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2017년 처음 시민에 공개됐고 서울시립미술관이 이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왔다. 이곳에서 K팝 이벤트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스포티파이가 국내에서 그간 협업해 이벤트를 열어온 뮤지션으로는 미국 팝 슈퍼스타 빌리 아일리시,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있다. 스포티파이와 협업 자체로 엔하이픈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5.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팝업 공간의 키워드는 몰입이다. 관객들은 뱀파이어의 집 콘셉트의 해당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 팔에 스탬프를 찍혀, 아니 뱀파이어에 물려야 한다. 이후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디자이어 : 언리시' 수록곡들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공간을 뱀파이어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돌아다니며 음반을 체험하게 된다. 멤버 제이가 프로듀싱과 작곡, 기타 연주에 참여한 수록곡 '헬리움(Helium)'이 흘러나오는 방엔 헬륨 풍선이 가득한 식이다. 멤버들의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엿볼 수 있는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멤버 손글씨 메시지가 담긴 엽서 등 한정 굿즈도 선착순으로 제공한다.
뱀파이어는 잔인함을 갖춘 공포의 대상임에도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 영역에서 감성적인 무엇으로 다뤄져왔다. 영화, 뮤지컬 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불멸에 대한 욕심, 에로틱함에 대한 욕정, 순수함에 대한 욕망 등이 빚어낸 사랑 정경의 고달픔을 드라마틱한 감정선으로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K팝에서 이런 애절함을 가져온 게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한 엔하이픈이다. K팝계 '트와일라잇' 서사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니 4집 '다크 블러드', 미니 5집 '오렌지 블러드'에서 선보인 뱀파이어 세계관은 하이브 오리지널 웹툰 '다크 문: 달의 제단'과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물리적인 구현이 이뤄졌고, 두 번째 월드 투어 '페이트'에서 현현했다.
이번 미니 6집에선 엔하이픈은 무엇인가를 갈망하면서도, 불안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젊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원하는 걸 몰라서 마치 피에 탐닉하는 듯한 엔하이픈 멤버들은 결국 피를 빠는 대신 자신들의 심장을 팬덤 '엔진'에 심고 "너를 안은 지옥은 천국인 걸"이라고 외친다. 이것이야말로 피로 쓴 연서(戀書)다.
스포티파이 코리아 박정주 뮤직팀 총괄도 "엔하이픈의 팬들을 향한 헌신은 아티스트와 팬들을 더욱 가깝게 연결하고자 하는 스포티파이의 비전과 맞닿아있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이날 벙커 현장을 찾아 이번 앨범 목표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1위를 꼽았다. 엔하이픈의 해당 차트 자체 최고 성적은 작년 정규 2집 '로맨스 : 언톨드(ROMANCE : UNTOLD)'로 기록한 2위다. 당시 첫 주 12만4000장 상당의 판매량으로 이 같은 기록을 세웠다. 엔하이픈의 이번 앨범 '빌보드 200' 첫 주 성적은 21일 자다. 2주 전 미국 컨트리 스타 모건 월렌의 새 앨범 '아임 더 프로블럼(I'm the Problem)'이 49만3000장의 판매량으로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했다. 14일 자 '빌보드 200'에서도 23만5000장의 판매량으로 1위를 기록할 것이 유력하다. 해당 주의 2위는 하이브를 대표하는 또 다른 그룹 '세븐틴'의 정규 5집 '해피 버스트데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월렌의 앨범이 21일 자에서 판매량이 다소 떨어진다면, 북미에서 작년 주가를 높인 엔하이픈이 수위를 놓고 경합할 여지가 생긴다.
'메종 엔하이픈'은 오는 14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펼쳐진다. 일본 도쿄에서는 7~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12~16일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앤팀. (사진 = YX 레이블즈 제공) 2025.04.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뜬 달은 상현망간의 달이다. 달 주기의 네 번째 위상으로, 상현달과 보름달 사이에 발생한다. 그런데 구름이 끼여 달이 잘 보이지 않아 공교롭게도 '다크 문'이 됐다.
이런 날은 영화 '언더월드' 세계관도 떠오른다. 인간이 모르는 지하세계에서 600여 년 간 계속돼 왔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간의 피튀기는 전쟁을 그린다. 하지만 뱀파이어 엔하이픈, 늑대인간 앤팀은 다투지 않는다.
이들의 언더월드는 아직은 아시아 투어를 돌고 있지만,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엔하이픈의 뒤를 따른 앤팀의 노력이 주를 이룬다.
앤팀의 열쇳말은 K팝 보이그룹들이 그렇듯 당연히 청춘에 배당돼 있다. 한 팀으로 결성돼 타인의 삶과 팬덤 '루네(LUNÉ)'의 가치를 알게 된 이들은 소설이 원작인 영화 '늑대의 유혹' 등 오래 전부터 내려져 온 청춘의 클리셰들로 고유성을 사수한다. 청춘의 패턴은 반복될지라도 그 인식 무늬는 은유 체계를 받아들이는 이들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 앤팀의 경우 늑대가 발톱으로 할퀸 모양의 생채기다. 그런데 이들의 청춘은 그 상처에 침잠하기 보다 날이 갈수록 연한 살이 굳은 살이 돼 더 믿음직스러워지는 과정에 방점이 찍힌다.
[서울=뉴시스] 앤팀. (사진 = YX레이블즈 제공) 2025.04.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오후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 앤팀 콘서트 투어 '어웨이큰 더 블러드라인' 인 서울('AWAKEN THE BLOODLINE' in SEOUL)'이 그 증거다. 이들의 서울 단독 콘서트는 지난해 8월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아레나 투어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공연장 규모가 약 2배 가까이 커졌다. 늑대 앞 두 다리를 형상화하는 듯한 무대 장치가 포효하는 이들의 정신을 반영하는 듯했다.
뜨거웠던 '다크문: 회색도시' OST인 '울프(W.O.L.F)'(Win Or Lose Fight) 무대를 끝내고 늑대 털을 연상시키는 머리를 한 조(Jo)는 "우리는 늑대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워 크라이'를 부른 뒤 케이가 마치 늑대가 카메라를 할퀴는 듯한 동작을 한 뒤 대표곡 '파이어워크'로 이어지는 대목이 이날 공연 연출의 백미 중 하나였다. 이들의 파도타기 구호도 늑대의 울음 소리를 뜻하는 "하울링"이다.
엔하이픈이 뱀파이처럼 체공 시간까지 맞춘 공중 부양 무대로 호평을 듣는다면, 앤팀은 '워 크라이' 등에서 늑대처럼 바닥을 강렬하고 넓게 쓰는 현실 밀착 퍼포먼스로 다른 근육을 쓴다.
특히 이날은 이전 공연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무대 매너, 태도가 돋보였다. 파워풀한 베이스 사운드와 업비트 리듬이 돋보이는 '빅 수키' 무대에선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처럼 그루브가 넘치는 동작들을 일사불란하게 선보였다.
무엇보다 한국 팬들에 대한 극직한 애정을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앤팀은 최근 하이브 음악 축제 '2025 위버스콘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국내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등 그간 드물었던 한국 활동에 주력했다.
주로 일본인으로 구성된 멤버들의 한국어 실력도 일취월장이었다. 특히 마키는 지난 내한 때보다 훨씬 발전된 한국어 실력을 뽐내며 "한국에 더 많이 와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은데 다음엔 더 멋있는 무대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케이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노래할 수 있는 콘서트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앤팀은 8일 오후 1시와 오후 6시 두 차례 더 국내 루네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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