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2] 영화 이씨>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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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내 동생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이제 내 고향까지 잃으라고? 난 절대 이 집 그냥은 못 줘."
숙현(정애화 분)은 집안의 장손인 손자 태석(이주협 분)에게 악에 받쳐 소리 지른다.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산인 고향 집이 집안의 딸들이 아닌 새파랗게 어린 손자에게 상속된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태석 또한 할아버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조금도 내놓을 마음이 없다. 지금까지 가족 간의 관계가 어땠을지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추측할 따름이지만, 집안의 며느리에 속할 엄마와 태석만 화면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에 상속 이상의 것이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긴 시간 묵혀 왔을 마음 깊숙한 곳의 감정이다.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집안 마지막 어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다. 상속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현실에서도 어렵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다른 작품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그려진 바 있다. 그래서일까? 서정미 감독은 한 지점을 비틀며 흥미로운 자리 하나를 마련해 낸다. 태석의 아버지이자 숙현의 남동생인,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 이 작은 틈으로 인해 극의 전면에 내세워진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은 형제간이 아닌, 고모와 조카, 세대 사이의 문제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 자리는 서로의 입장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면서도 훨씬 불편한 마음으로 완성해 낸다.
02.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 영화는 '집안의 유일한 남성이 된 태석과 나머지 이 씨 여성 사이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숙현의 곁에 딸 영서(조윤지 분)가 있듯이 태석의 곁에도 그의 엄마이자 집안의 며느리인 세란(박수민 분)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상속의 주체는 손자인 태석이다. 아들도 아닌 손자 말이다. 고리타분한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남성 중심적 사고 및 부의 이동은 바로 다음 세대인 아들에게 직접 주어져도 다른 딸들에게는 억울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런데 세대 하나를 건너뛴 손자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영화의 틈이 이 지점을 비집고 자리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유산으로 남겨진 집은 숙현을 비롯한 딸들에게는 단순한 재산의 의미가 아닌 성장 과정을 공유한 추억과 기억의 공간이기까지 하다. 함께 어린 시절을 공유한 남동생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손자 태석은 단지 집안의 장손이란 이유를 제외하면 그 어떤 명분도 가질 수 없다. 고모와 사촌 누나들을 모두 건너뛰고 어떻게 그 집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집안의 여성들로 하여금 평생을 그늘진 자리에서 머물게 만들었던 '장손'이라는 단어는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이런 상황까지 만든다.
03.
"엄마, 그 집 없었던 셈 치고 잊어버리자. 어차피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장례가 끝나고 갈무리가 되는 듯 보였던 가족의 문제는 영화가 숙현으로 하여금 자신이 마련한 그 틈 하나를 놓지 못하도록 하면서 계속 이어지게 된다. 조카에게 넘어간 유산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가 담을 넘어 침입하려다 파출소까지 향하게 되면서다. 숙현과 영서는 이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집이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명의로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된다. 주소는 맞는데, 집 주인이 며칠 전에 바뀐 것 같다는 경찰의 설명이다. 어떤 마음의 연결 고리도 가지지 못한 채, 상속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얻게 된 이씨 집안의 유산이 태석에게는 그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양측의 갈등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숙현은 기어이 자물쇠를 깨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유골함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다시 출동한 경찰의 연락을 받은 태석은 그런 고모가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며 빨리 잡아가 달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유골함 또한 장손인 자신에게 상속된 것이고, 앞마당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유언마저 자신의 것임을 강조한다. 망연자실한 숙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어린 장손 앞에서 자신은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이씨 가문의 형제'에 불과해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숙현조차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마다 딸 영서의 남편이자 사위인 장 서방만 애타게 찾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잘나가는 변호사여서가 아니라 그 또한 한 가정의 가장 혹은 장손으로, 동일한 가부장적 사회와 구조 안에서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임을 고려하면 그의 능력에 기대고자 하는 숙현의 태도에는 반대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분명히 놓인다. 물론 이 자리에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습적으로 습득된 사고와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의 문제가 함께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딸 영서의 이혼에는 점차 변해가는 사회적 흐름이 내재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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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씨 가문의 형제들> 스틸컷 |
ⓒ 인디그라운드 |
"태석아. 우리 아버지 제사는 지내 줄 거냐?"
극의 말미에서 집안의 딸들이 모여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장이나 장손이 존재하지 않는, 오롯한 여성들의 의식이다. 이제 영화의 타이틀인 '이씨 가문의 형제들' 속 형제들이 남성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형과 아우를 아우르는 의미보다 조금 더 광의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형제와 자매, 남매를 모두 통틀어 이르는 말에 가깝다. 이들 모두는 대외적으로 대(代)와 성(姓), 가장과 장손의 자리를 이어받는 일에는 이번에도 실패한다. 이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따라왔던 과거 세대로부터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이어서다. 여전히 남은 걸음이 존재하고, 진정한 '형제'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더 필요로 하겠지만.
변화는 단번에 찾아오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들이 몸담고 있는, 오롯이 빠져나오지 못한 전통적 의미의 자리에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처럼 '가족'의 굴레, 테두리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고,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사랑했다는 꽃나무 화분에 물을 주는, 앞에서 담배를 피워 죄송하다는 영서의 말이 나는 그래서 좋다. 나아가는 걸음만큼이나 돌볼 줄 아는 마음. 이씨 가문의 남자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다시 장손이 된 태석 또한, 집안의 여성들이 보여준 것도 같다.
덧붙이는 글 |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배급 환경 개선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는 2025년 3월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90편(장편 22편, 단편 68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일곱 번째 큐레이션인 '어느 가족들'은 6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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