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하와이 용암에서 지구 핵 금속 검출
금도 함께 섞여 나오고 있을 가능성
지구에 매장된 금의 99.999%는 땅속 약 3000km 깊이의 핵에 갇혀 있어 인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괴팅겐대 제공
원자번호 79번의 비교적 희귀한 원소인 금은 고대 문명이 탄생한 이래 수천년 동안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세계금협의회(WGC) 추정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금은 21만6천톤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이 보관돼 있는 곳은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하 금고다. 미국 정부뿐 아니라 전 세계 중앙은행과 국제기구들이 맡긴 금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2024년 기준으로 6300여톤의 금이 이곳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켄터키주 포트녹스에 있는 미국 금괴 보관소(U.S. Bullion Depository)에도 4500톤의 금이 보관돼 있다.
이 많은 금은 100개국에 걸쳐 널리 분포해 있는 금광에서 나온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로 꼽히는 곳은 미국 네바다의 금광단지와 우즈베키스탄의 무룬타우 광산이다. 두 곳에서 나는 금은 각각 연간 84톤에 이른다.
하지만 진짜 금광은 다른 데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을 비롯한 귀금속의 99.999% 이상은 지하 3000km 깊이의 핵에 있다. 지구 형성 초기 지구가 액체 상태였을 때 철과 함께 지구 중심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핵에 존재하는 금은 지구 전체를 50c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으로 추정한다. 이 금은 태양계가 형성되기 전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충돌 같은 격렬한 우주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뒤 우주 공간으로 방출돼 지구의 일부분이 됐다.
그런데 이 접근 불가 구역에 있는 금 덩어리가 조금씩 지표면으로 새어나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금 가운데 일부는 수천km 깊이의 지구 핵에서 올라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 괴팅겐대 연구진은 하와이 용암에서 발견한 희귀금속 루테늄이 지구 핵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이는 지구 핵에서 금도 새어 나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괴팅겐대 제공
희귀금속 루테늄100 동위원소가 증거
독일 괴팅겐대 연구진은 하와이섬의 화산암에서 지구의 핵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금속 루테늄 동위원소 증거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반지름이 약 6400km인 지구는 바깥쪽에서부터 화강암, 현무암 등의 지각(~70km), 규산염 광물로 이뤄진 맨틀(~2900km), 중금속으로 이뤄진 핵(~6400km) 3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금속 핵에는 루테늄100 동위원소가 맨틀보다 더 많이 있는데, 지표면으로 올라온 용암에서 주변 맨틀보다 루테늄100 동위원소의 비율이 매우 높은 걸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는 이 암석들이 핵-맨틀 경계지점에서 유래했다는 걸 시사한다고 밝혔다.
루테늄은 원자번호 44번의 백금속 중금속으로 지각에서는 매우 희귀한 금속이다. 전자산업에서 박막 코팅 재료로 많이 쓰인다. 연구를 주도한 닐스 메슬링 박사(지구화학)는 “첫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금맥을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번에 발견한 데이터는 금과 다른 귀금속을 포함한 핵 물질이 지구 맨틀로 새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를 구성하는 지각과 맨틀, 핵의 구조를 표현한 그림. 중심부에 단단한 내핵이 있고, 그 위로 액체 상태의 외핵, 암석질 맨틀, 그리고 상대적으로 얇은 지각이 있다. 괴팅겐대 제공
맨틀에서 분리돼 핵으로 내려갔다 다시 위로
45억년 전 지구 형성 초기에 루테늄과 같은 무거운 친철원소(HSE)는 대부분 규산염 맨틀에서 분리돼 더 깊은 금속 핵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지구의 핵에는 친철원소가 고도로 농축되어 있는 반면, 규산염 맨틀에는 극도로 고갈되어 있다.
친철원소는 철과 잘 결합하는 성질의 금속을 말한다. 금과 루테늄을 비롯해 로듐, 팔라듐, 오스뮴, 이리듐, 백금, 레늄 등이 친철원소에 속한다. 연구진은 금속 핵에서 유래한 루테늄이 용암을 따라 지표면까지 올라왔다면, 같은 친철원소로 핵에 있는 금도 함께 새어나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논문 공동저자인 마티아스 윌볼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구의 핵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고립돼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줄 뿐 아니라, 이제 수십조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맨틀 물질, 즉 암석이 핵-맨틀 경계에서 지구 표면으로 솟아올라 하와이같은 섬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논문 정보
Ru and W isotope systematics in ocean island basalts reveals core leakage. Nature (2025). https://doi.org/10.1038/s41586-025-09003-0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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