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냐, 전당대회냐 갈림길
차기 당권 내년 지선 공천 행사
한동훈 쇄신 앞세워 당권 도전
친윤계, 중도 대항마 내세울 듯
김문수 후보 직접 등판 가능성도
비대위 전환 후 '혁신' 숨고르기
6·3 대선 출구조사 결과, 패색이 크게 짙어진 국민의힘의 시선은 벌써부터 대선 이후로 옮겨지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과 탄핵 이후 무너진 보수 진영을 재건할 리더십을 두고 진검승부가 불가피하다.
당장 국민의힘 주류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 목숨을 건 당권 투쟁이 불 보듯 뻔해졌다. 당권을 거머쥔 쪽은 지방선거 공천권 확보는 물론 이재명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보수 재건을 주도할 명분을 쥐게 된다. 당권을 뺏긴 쪽은 대선 패배 책임을 온전히 떠안으며 정치생명까지 위협당할 수 있다.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는 혈투가 펼쳐지는 셈이다.
다만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탄생한 바른정당이 미약한 지지세와 전통적 보수층의 외면으로 성과 없이 흡수된 만큼, 보수 분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분당을 통한 정계개편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문수(가운데)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2일 서울 마포구 KT&G상상마당에서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날 저녁 발표된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 51.7%, 김문수 후보 39.3%, 이준석 후보 7.7%를 기록했다. 이재명 후보와 김 후보의 격차는 12.4%포인차로, 이대로 개표가 진행이 된다면 김 후보의 패배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야당 신세로 전락할 국민의힘 앞에 펼쳐질 미래는 크게 ①전당대회를 통한 당대표 선출 ②권영세-김용태에 이은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돌입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전당대회다. 7, 8월이 유력하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선 패배를 지고 사퇴하고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시나리오다.
'비대위' 카드는 낮게 보는 분위기다. 원내 지도부의 한 의원은 "그동안 두 차례나 비대위 체제를 운영했고, 선출되지 않은 비대위가 나올 경우 당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리더십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당원이 뽑은 당대표를 통해 '혁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논리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확보한 민주당을 견제하기 위해서 비대위 체제는 한계가 있다.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친한동훈계와 친윤석열계, 당 중진 그룹, 김 후보 측의 4파전이 불 보듯 뻔하다. 친한계 20여 명 의원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앞세워 쇄신의 깃발을 들겠다는 각오다. 친한계는 이번 대선 패배 원인으로 윤 전 대통령과 단절 실패를 꼽고 있다. 그만큼 차기 당대표는 탄핵과 불법 비상계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 계획이다. 친한계 B의원은 "2026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불법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당대표로 취임해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피날레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김 후보, 한동훈 전 대표, 양향자 전 의원. 연합뉴스
친윤계도 결사항전 태세다. 한 전 대표가 당대표가 될 경우 자신들이 설 자리는 사실상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 친한계에 당권이 넘어가면 지방선거는 물론이거니와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최근 친윤계 지도부가 계파 불용을 당헌에 명문화하며 계파 활동을 금지한 것도 친한계 견제용이란 시각이다. 당권을 미끼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공을 들인 것도 향후 한 전 대표와의 당권 경쟁을 겨냥해 이준석 카드를 영입하려는 포석이었다는 분석이다.
친윤계 입장에선 일단 '한동훈 대항마'를 찾는 게 급선무다. 윤 전 대통령 수호에 앞장선 강경한 '찐윤(윤석열)' 인사보다는 비교적 색채가 옅은 의원들 중에서 후보군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친윤 색채가 강할 경우 당원들의 반감으로 한 전 대표 승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판단에서다. 벌써 비교적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던 수도권 중진, 부산·경남(PK) 지역 중진 의원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친윤계 의원실 관계자는 "(친윤계 사이에선) 한동훈만은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며 "탄핵에 반대하지 않거나 '윤석열 거리두기'를 강조해오면서도 한 전 대표에 대항해 당을 혁신할 수 있는 인물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당권 싸움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 대선 후보로서 모처럼 잡은 당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당원들이 대선에서 패배한 김 후보에게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박수를 보낼 경우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03%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득표율 41.08%)에게 패배했지만 같은 해 7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전당대회 대신 비대위 체제가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전당대회를 열 경우, 당내 극심한 갈등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외부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당을 안정시키면서 혁신을 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온다. 일단 숨고르기 이후 당이 안정 궤도에 오르면 그때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일부 친윤계도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재야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인명진 당시 목사는 2016년 말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인돼 당 쇄신작업을 주도했었다. 당시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국민의힘 의원은 "만약 7, 8월에 전당대회를 열면 한 전 대표 등 얼마 전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이 또 나올 텐데 그렇다면 당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겠느냐"며 "또 전당대회 과정에서 계파갈등이 터져나오면 국민들이 볼 때 우리 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