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국힘 계열 지지했고 부정투표, 사전선거 조작 믿는 아버지와 대선 개표방송을 보다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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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제21대 대통련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 본 뒤 퇴장하고 있다. 왼쪽은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 |
ⓒ 공동취재사진 |
매주 화요일은 아버지와 함께 온가족이 식사를 하는 날이다. 하필 이번 주는 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 날이었다. 식사 시간은 7시. TV를 켜놓고 식사를 했다. TV에서는 1시간 뒤 있을 예측을 놓고서 분주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국힘'과 일맥상통하는 정당 지지로 일관했다. 부정투표와 사전선거 조작을 믿는 아버지는 굳이 살고 있는 경북 예천에서 투표하지 않고 멀고먼 경남 창원까지 가서 본투표를 하고 왔다. 예천에서 창원까지 가려면 대구까지 가서 갈아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주소지를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간 정치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나, 나나 선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아는 아버지에겐 손자이자, 나에겐 아들(8살)이 입을 열었다.
"아빠는 이번에 누구 찍었어?"
"나는 이재명 찍었지."
"나도 이재명 찍었는데."
아버지가 반응을 보였다.
(손자를 보면서) "왜 이재명 찍었어?"
"1번이라서요. 될 것 같으니까요."
"허허허."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도 웃었다. 아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아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아버지는 김문수 당선을 믿는 표정이었다
"아빠, 이번에 사람들이 다 이재명 찍었어?"
"그렇진 않아. 보통 사람들이 반반씩 찍어. 생각이 다 다르거든."
그러면서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김문수 당선을 믿는 표정이었다. 마침 TV에선 '국힘' 출신 한 의원이 "(김문수 후보의) 40%대 중반 득표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표정을 보면서 어쩌면 저 '국힘' 출신 의원도 김문수 후보의 당선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8살 손자, 7살 손녀에게 말을 걸었다. "태권도는 어디까지 배웠니? 자세 한번 보자." 손자 손녀는 '얍얍' 거리면서 열심히 발을 찼다. 손녀는 더 나아가 발찢기 시범까지 보였다. 아버지는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조용히 지켜보던 아내가 처음으로 선거 관련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 이번에 이준석은 몇 퍼센트 정도 얻을까요?"
"11% 정도 얻지 않을까. 다음엔 이준석이 무조건 대통령 될 거다. 젊은 사람이 해야지. 죄 지은 사람이 하면 되겠나."
꾹 눌렀다가 터진 것처럼 아버진 제법 긴 말을 했다. '죄 지른 사람'은 이재명을 뜻했다. 말을 살펴보니 김문수 당선에 대해선 반신반의였다. 당선될 것 같다고 믿으면서 한편으론 낙선할 거라 믿고 있으신 듯했다. 이재명 당선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5년 뒤 이준석 당선을 꿈꾸며 누그러뜨리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열심히 재롱을 떨었고 아버지는 계속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럼 됐다. 당선 유무에 대해선 한치 의심도 없었고, 오늘은 가족끼리 보내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고마웠다.
7시 50분을 넘어서자 TV를 넘어서던 아버지가 제대로 소파에 앉아 TV를 응시했다. 나는 여전히 밥을 먹는 중이었다. 드디어 8시 직전. TV에서 '10 9 8 7 6 5 4 3 2 1'이라는 숫자가 크게 반짝였다.
"이재명 5.17%, 김문수 39.3%." 화면 가득 득표율이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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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대선 출구조사 예측 득표율 TV화면 캡처 |
ⓒ 김대홍 |
10초 정도 지났을까. 아버지가 일어섰다. "나 간다."
아버지는 등을 보이시며 황급히 집을 떠났다.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란 손녀의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엄청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생 '국힘' 지지자이자, 부정선거를 믿고, 사전선거 무효를 지지하는 아버지는 정치나 사회분야에 관해선 어찌 설득할 수도, 교감을 나누기도 힘든 분이다. 하지만 나에겐 단 하나뿐인 아버지다.
지난 3년 동안 참 괴로웠다. 초기 한 달, 아니 일주일 정도만 마음 편했나. 첫날부터 불편했나. 잘 모르겠다. 3년 내내 괴로웠다는 게 맞다. 평소 안보던 '정치 유투브'를 어느 순간부터 매일 보기 시작했고, 이번엔 사전투표함 감시활동도 이틀이나 했다. 그전까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아버진 내가 괴로웠던 것처럼 괴로울까?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내내 부르짖었던 것처럼 '통합'을 잘 이뤄, 딱딱한 아버지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적이 일어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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