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젊은 AI 인재들 미국 시장 목표로…“국내 기업은 이직 위한 징검다리”
한국 IT기업 AI 인재 부족 심각…10곳 중 8곳 인재 부족
국내 초봉, 해외와 비교 불가…미국, 중국 등 AI 인재 확보 사활
AI.[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박세정·차민주 기자] #. 대학원 오모(30씨)는 한국에서 인공지능(AI)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박사 과정을 준비 중이다. 그가 목표로 하는 취업 무대는 한국이 아니다. 오 씨는 “같은 연구실에 있는 이들 중 과반수가 이미 한국은 미국에 비해 AI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미국행을 바라보고 있다”며 “나 또한 빅테크 취업에 유리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중 한 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 최모(28)씨는 이직을 준비 중이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표 IT 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그에게 현재의 직장은 빅테로 이직하기 위한 ‘징검다리’다. 최 씨는 “여기서 유학 자금을 모으고 경험을 쌓은 뒤,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빅테크로 이직하는 게 목표”라며 “나뿐만 아니라 이미 동기 대여섯명이 같은 사유로 퇴직하거나, 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분야 야망 있는 인재들 사이에서 네카라쿠배는 빅테크를 위한 하나의 이직 경로로 여겨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국내 젊은 AI ‘두뇌’들의 해외 유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 AI 관련 학부생·대학원생 사이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확산하면서 국내보단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AI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인재 싸움’이 핵심인 AI 무대에서 자칫 국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 AI 인재 10명 중 4명은 해외로…‘두뇌’ 유출 심각= 국내 석·박사 학위를 갖춘 AI 고급 인재들 중 상당수는 한국 대신 해외행을 택하고 있다.
실제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 중 40%가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최상위 AI 연구자들이 졸업 후 활동하는 국가는 미국(57%)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AI 인재 유출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2025’에 따르면 한국은 이스라엘과 인도, 헝가리, 터키에 이어 다섯번째로 AI 인재 유출이 많은 국가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인구 1만명당 AI 기술 보유자의 순유출 규모가 -0.3명으로, 10만명당 3명은 국외로 빠져나갔다.
부족한 AI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면서, 한국 IT기업들의 AI 인재 부족 문제도 한계에 달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에서 AI 사업을 하는 기업 2354곳 중 81.9%가 “AI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향후에는 더 심각하다. 고용노동부는 2027년까지 AI분야에서만 1만2800명의 신규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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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 비교 불가, 국내 기업 열악한 처우…전 세계 ‘AI’ 인재 확보에 ‘올인’= AI 고급 인재가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내 기업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낮은 처우가 꼽힌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연구원 초봉은 국내 기업과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구글, 아마존, 오픈AI의 주요 연구직군의 연봉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AI 연구원 초봉은 11억3000만원으로, 국내 기업 초봉 수준과 경쟁 자체가 불가하다”고 전했다.
고급 인재들의 국내 기업 만족도 또한 낮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 인재순위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고숙련 인재가 느끼는 기업 환경 만족도’ 순위는 2023년 47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5년 37위보다 10위 하락한 수치다.
미국, 중국 등에서 파격적인 보수를 내걸고 인재를 흡수하고 있는 것도 국내 인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미국은 대표적인 AI 인재 ‘블랙홀’이다. 시장을 주도하는 빅테크가 집중된 만큼 국내 젊은 인재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해외 우수 연구자 유치도 활발하다. 전 세계 상위 20%에 해당하는 AI 연구 인력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AI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의 한 AI 개발 업체는 신입 초봉을 중국 평균 초봉의 8배 이상으로 내거는 등 파격적인 대우로 AI 인재 모시기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일본도 AI 고급인재 유입에 공을 들이면서, 최근 AI 인재 ‘순 유입국’으로 전환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일본은 해외 우수 인재에게 배우자 취업, 영주권 요건 완화, 가사도우미 고용 등을 지원하면서 해외 인재 유치에 힘을 실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인재를 잡아둘 수 있는 현실적인 생태계 마련이 시급”하다며 “한국 인재 유출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인재를 유치해 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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