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대선 토론] 이준석의 '혐오 발언',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웠다
[손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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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
ⓒ 국회사진기자단 |
내란 이후의 혼란 때문인가? 4명의 후보가 세 차례 모여 진행한 대선 토론회는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을 선택하는 토론회로서의 품격을 찾아볼 수 없는 막말 대잔치로 끝났다. 물론 후보에 대한 검증은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을 욕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 토론회는 누가 더 나라를 잘 이끌어 갈 것인지를 보여주기보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를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만 드러낸, '역대 최악의 대선 토론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을 찍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고 했던가. 시종일관 각종 팩트와 전문용어, 수치를 들이밀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가장 강력한 공격수임을 드러내 왔던 이준석 후보는 토론회 막판 결국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울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전조는 있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이른바 '형수 욕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올해 4월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 가해자가 이재명 후보의 욕설을 따라 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그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고 우리 형님이 어머니한테 한 말"이라며 "제가 좀 과하게 표현"했다고 사과해야 했다.
문제는 잠시 뒤다. 이준석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질문 형식을 빌려,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했다고 '추정'(이것이 정확하게 누가 쓴 글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된 소위 '젓가락 게시글'을 그대로 옮겼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기준에서 여성혐오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을 얹어서.
질문을 받은 권영국 후보는 질문의 취지를 모르겠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으나, 추후 이것이 "처음 들어본 말"이라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 역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누가 한 말인지 몰랐거나,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사이에 끼어 있는 말 정도로 추측했을 것이다.
기자 역시 한참이나 인터넷을 검색해 본 후에야 그 질문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준석 후보는 함께 토론회에 참여한 대선 후보조차도 몰랐던 명백한 여성혐오의 문장을, 전국에 생중계되는 TV 앞에서 떠들어 댄 것이다.
하나는 같고, 하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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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제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권영국 후보에게 질문하는 장면. 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 관련 의혹을 거론하기 위해 여성 성기가 언급되는 혐오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
ⓒ JTBC 갈무리 |
이것은 이재명 후보의 소위 형수 욕설과 하나는 유사하고, 하나는 다르다. 우선 이 발언은 본인이 직접 한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옮겼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재명 후보는 형의 욕설을,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의 아들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옮겼다. 그러나 다른 점은 이재명 후보의 욕설은 사인 간의 대화가 녹취된 것이고, 이준석 후보의 질문은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심각한가?
논란이 일자 이준석 후보는 SNS에 이런 반응이 "혐오나 갈라치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진영 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민주진보진영의 위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왜곡된 성의식에 대해서 추상같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후보들은 자격이 없다고 확신"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이런 반응은 이준석 후보가 왜 자신의 발언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지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 후보가 선거 때마다 형수 욕설이 녹음된 방송을 틀어대는 군중을 감당해야 했던 이유는, 그것이 다른 이의 욕설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옮긴 것이더라도, 그 배경과 맥락에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더라도, 공개적인 대화가 아니라 사인 간의 대화였더라도, 정치인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는 사인 간의 대화도 아닌 공중파에서, 시청자를 앞에 두고 여성혐오의 욕설을 옮긴 것 아닌가? 본인의 욕설이 아니라면 상관없는가?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의 욕설은 왜 문제 삼는가?
이준석의 미래, 오늘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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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세력으로의 후보 단일화는 이번 선거에 없다. 끝까지 싸워 끝내 이기겠다"고 밝힌 뒤 나서고 있다. |
ⓒ 남소연 |
이준석 후보는 비상계엄을 철저히 비판한 올곧은 처신처럼, 새로운 보수 혁신을 이룰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아 왔다. 한국 보수세력의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면서도,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토론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세상을 보는 그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분투를 응원하는 이들도 꽤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생각은 달라도 토론할 수 있는 보수는 우리 사회에서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는 매우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오늘 직접 올린 SNS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가 보수의 새로운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지금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재명 후보가 선거 때마다 자신의 욕설을 들어야만 했던 것처럼, 이번 사건은 늘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닐 일이다.
"비뚤어진 성의식을 마주했을 때 지위고하나 멀고 가까운 관계를 떠나 지도자가 읍참마속의 자세로 단호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습니다. (···) 지도자의 자세란, 그와 같이 불편하더라도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이준석 후보의 SN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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