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 분기 순이익 64% 급감
“관세 영향 1500만달러 이상”
관세 불확실성에 PC 시장 성장률 5%서 제자리걸음으로 하락
미국 캘리포티아 몬테벨로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 노트북이 진열돼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세계 최대 PC 제조사인 레노버의 분기 순이익이 반토막 나면서 홍콩 증시에서 레노버 주가가 4.5% 급락했다. 양 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발 관세 조치가 레노버 사업에 1500만달러(207억원)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올해 PC 업황 반전을 기대해 왔던 PC 제조사들은 트럼프의 추가 관세 정책을 주시하며 가격 인상 눈치 게임에 돌입했다.
◇ 레노버 CEO “관세 20%, 결코 작은 숫자 아냐”
레노버는 22일(현지시각) 2025 회계연도 4분기(1~3월) 순이익이 전년 대비 64% 급감한 9000만달러(약 1240억원)라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2억3000만달러(약 3180억원)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169억8000만달러(약 23조3000억원)로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기 전 유통 재고를 쌓아두려는 수요로 PC, 스마트폰 등의 판매량이 늘었으나, 경쟁이 심화하면서 수익성은 악화한 것이다. 레노버는 특히 경쟁 심화에 따른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의 손익 저하와 파생상품 손실을 순이익 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양 CEO는 관세도 사업에 여파를 미쳤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0%로 인상했다. 이를 두고 양 CEO는 “20%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1500만달러 이상의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레노버는 핵심 제조 기지를 중국에 두고 있는데, 미국 시장 매출 비중은 34%에 이른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산 반도체, 휴대폰, 컴퓨터 및 기타 전자제품 수입에 대해 145%의 관세를 면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치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반도체에 별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양 CEO는 “관세 자체보다는 불확실성과 급격한 변화가 더 걱정된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PC 시장은 관세나 지정학적 갈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윈도10 서비스 종료에 따른 기기 업그레이드 수요와 인공지능(AI) 노트북 수요가 맞물려 올해 노트북 시장이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컸으나, 업계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시스에 따르면 1분기 PC 출하량은 전년 대비 9.4% 증가했지만, 관세 전 주문을 앞당긴 수요가 반영돼 향후 시장 향방을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 수요 걱정에 가격 인상도 쉽지 않아
이에 PC 기업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가격 인상을 고심하고 있다. 대만 PC 기업 에이수스의 샘슨 후 공동 CEO는 이날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전시회에서 “관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 내 가격을 최대 10%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의 경우 HP, 델 등 현지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한데, 가격 인상은 PC 수요를 약화할 위험이 있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레노버도 가격을 올리는 순간 경쟁사에 점유율을 뺏길 수 있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레노버 역시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티그룹은 “레노버의 경우 소비자용 PC 모델의 가격 조정은 비교적 쉽지만, 미국 전체 PC 출하량의 약 69%를 차지하는 상업용 PC 가격 협상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PC 시장이 활기를 띠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에이스수의 후 CEO는 “원래 PC 시장 성장률 추정치는 약 5%였으나,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추정치는 1% 혹은 2%, 심지어는 제자리걸음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말했다. PC 시장 불황의 ‘반전 카드’로 여겨졌던 AI PC 시장이 무르익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후 CEO는 “AI가 기대만큼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건 관련 소프트웨어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라며 “AI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려면 산업 전반에 걸쳐 1~2년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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