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점선면은 지난주 구독자 참여 이벤트 ‘내가 바라는 공약은?’을 진행했어요. 짧은 시간 정말 많은 분이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독자님들이 꿈꾸는 새로운 한국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점선면은 독자 여러분이 기대하는 공약을 바탕으로 이번 대선 주요 의제를 분석하는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각 후보가 의제와 관련해 어떤 공약을 냈는지도 함께 정리합니다. 첫번째 의제는 ‘저출생’입니다.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사회 구조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근본적인 환경 개선 없이 일시적인 금전 지원만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돈만 주고 낳으라 하기 전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엄꿈아자님(인천·경기, 10대 여성)
“저출산 현상 해결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이 시급합니다. 피상적인 지원책이 아닌, 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 및 일과 양육 병행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는 여성의 경력 단절 심화를 방지하기 위해 근무 환경 개선을 포함한, 실질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책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및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직장 내 불이익 해소 방안 마련이 중요합니다.”
-푸푸님(인천·경기, 20대 여성)
‘정답’ 비껴가는 저출생 공약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인데요. 합계출산율이 1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가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보도했는데요. 0.7명 수준의 합계출산율이 유지된다면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국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죠. 이처럼 저출생 현상은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이기에 주요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저출생 해결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먼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아동수당(만 8세 미만 아동에게 매달 10만원 지급)을 만 18세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어요. 또한 자녀 수에 따라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세액 공제율을 올리고,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는 등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주로 주거 지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른바 ‘333 청년주택’ 공약을 내놨는데요. 결혼하면 3년, 첫째 아이를 낳으면 3년, 둘째를 낳으면 3년 등 총 9년간 청년주택 주거비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에요. 아이를 낳으면 디딤돌(주택구입자금 대출),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등의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대출 대상자의 소득 기준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두 후보가 아주 유사한 공약을 발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이 후보는 월 10만원씩 부모가 저축하면 정부가 똑같이 10만원씩 지원해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우리아이 자립펀드’ 공약을 내세웠는데요, 김 후보의 ‘우리아이 첫걸음 계좌’도 이름만 다를 뿐 정책의 목표와 운영 방식은 사실상 똑같습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 후보와 동일하게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확대하고, 금액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또한 임신·출산·산후조리 과정 모두 원스톱으로 의료비를 지원하고, 전국 국공립어린이집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점선면 독자님들이 보시기에 어떤가요? 후보들의 공약이 비슷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각 후보의 저출생 공약이 전반적으로 아동수당, 의료비, 주거비 등 ‘현금 지원 확대’에 치중하고 있어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후보의 경우 일·가정 양립 지원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공공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 강화,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수업료 지원 확대 등 기존 방안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일 뿐, 거시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저출생이 단순 비용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죠. 맞벌이 부부는 증가하고 대가족에 의존했던 자녀 돌봄 체계가 해체됐지만, 여전히 돌봄에 대한 대안은 찾기 힘든 구조적 문제가 존재합니다. OECD 최장을 ‘자랑’하는 장시간 노동 시간으로 인한 돌봄 시간의 절대적 부족, 성별 및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존재하는 육아휴직 사용 실태 등을 해결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정답’은 이미 다 나와있습니다. 캐나다 퀘백 주정부는 2006년 여성이 출산 후 맘 편히 노동현장에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 ‘부모보험’(Quebec Parental Insurance Plan)을 도입했어요. 4대 보험처럼 근로자라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의무 보험인데요. 자녀가 없는 근로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성·부성휴가, 육아휴직, 입양휴직을 사용하는 부모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되고, 부모들은 최장 50주까지 유급휴가를 쓸 수 있어요. 휴직 기간 소득의 최대 75%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남성의 육아휴직이 크게 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약 44%)이 낮아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죠. 퀘백의 부모보험은 남성의 육아 참여율 상승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상승이 서로 순환하는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북유럽의 ‘라테 파파’(적극적으로 육아를 하는 북유럽의 아빠를 부르는 말)를 취재했던 송현숙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전 세계의 전문가와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주요국들이 마르고 닳도록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며 “아이를 낳고 싶은 남녀 모두에게 아이를 키울 시간과 이를 위한 일정 부분의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인데 우리만 정답 사이를 비껴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스웨덴의 뮈르달 부부가 일·가정 양립을 인구 대책의 핵심으로 제시한 <인구 위기>란 책을 발표한 때가 1934년. 그후 90여년이 지난 2025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된 일·가정 양립에 관한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의아할 지경입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10대 공약 중 저출생 관련 공약이 없어 이번 뉴스레터에 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후보는 10대 공약과는 별도로 자녀 셋 이상 가구 차량에 특별 번호판을 부착해 고속도로 이용이나 주차 등에 편의를 받게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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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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