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확장 정책에 전력난·탄소역주행 우려... 전문가들 '원전 만능주의'에 경고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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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에너지정의행동이 주최한 ‘AI 전력수요, 핵발전 확대가 답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김병권 독립연구자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김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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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부의 인공지능(AI) 정책이 성공하면 반드시 기후문제와 전력난이 일어날 거다. 실패하면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 어느 쪽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그렇다."
김병권 독립연구자는 지난 1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AI 전력수요, 핵발전 확대가 답인가' 토론회에서 이처럼 경고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AI 대전환'이라는 슬로건 아래 주요 정당 후보들이 내건 인공지능 공약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자리였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호 공약으로 AI를 꼽았습니다. AI 민간투자 100조 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확보를 약속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들 공약 어디에서도 AI가 불러올 기후·생태위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김 연구자는 "차기 정부의 AI 공약이 과연 기존 탄소중립 계획과 양립 가능한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AI 전력수요 급증에 여야 모두 親원전 행보
AI 확대는 곧 막대한 전력수요 증가를 수반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4월 '에너지와 AI'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이 전 세계 전력수요의 4.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문제는 전력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어떻게 병행할지입니다. 현재 여야 후보 모두 원자력발전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직전 여당이자 원내 제2당인 국민의힘은 대형 원전과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을 포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탈원전·감원전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원전 도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선 공약인 국가 AI 데이터집적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선 원전이 불가피하단 입장입니다.
김 연구자는 이같은 전략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신규 원전이 빨라야 2032년, 대부분은 2037년 이후 완공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요 기관 및 업계에서 AI 전력수요 급증이 2025~2030년 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SMR 역시 기술과 안정성, 주민수용성 측면에서 10년 내 상용화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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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년간 국가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증가는 미국(연두색)이 주도했다. 중국(하늘색)이 그 뒤를 따랐으나 미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I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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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 전기본, 미국발 챗GPT 공포에 '수요예측 과잉' 지적
AI로 인한 전력수요 예측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2020년 이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증가를 볼 때, 미국·중국 외 지역에서는 증가율이 높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IEA의 향후 예측치에서도 미국과 그외 국가 간 전력증가율은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1차 전기본의 전력소비량 예측은 미국 상황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대응을 짠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2038년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30테라와트시(TWh)에 달할 전망입니다. 2023년 5TWh 대비 6배나 높습니다. 그는 이같은 전망이 국내 기술수준이나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챗GPT 공포'로 인해 과장된 예측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아직 한국산 AI 서비스 비중이 크지 않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한국 사람 역시도) 대부분 챗GPT나 제미나이 등 미국 AI를 쓴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산 AI가 많이 쓰이지도 않는데 전력수요만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고 원전부터 짓겠다는 건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며 "공급을 만들고 수요를 끌어오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요 데이터센터 허브, 규제 도입 박차…한국은?
한편, 세계 주요국들은 AI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해 규제 도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데이터센터 허브인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2019년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잠정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2023년에는 모라토리엄을 해제하면서 추가 용량 300메가와트(MW) 중 200MW는 재생에너지 공급 업체에 할당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습니다.
독일에서는 2023년 '에너지효율법(EnEf)'이 도입됐습니다. 데이터센터의 ▲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 ▲ 에너지소비 정보 공개 의무 ▲ 에너지효율 개선 의무 ▲ 폐열사용량 의무 등이 담겼습니다. 독일에는 유럽 데이터센터의 거점인 프랑크푸르트가 위치해 있습니다.
미국 북부 버지니아주에서도 데이터센터 신규 유치에 대한 주민 반발이 거셉니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밀집지로, 지역 전력소비의 25%를 데이터센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의회에서는 데이터센터 규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과밀되며 전력망 포화와 주민 갈등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가동 중인 147개 데이터센터 중 44곳이 경기도에 있습니다.
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2029년까지 전국에 예정된 데이터센터 732곳 중 413곳이 경기도에 들어설 예정"이라며 "부천·고양·파주 등지에서는 송전망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린AI, 해답은 분산·재생에너지 전환"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재생에너지 기반의 AI 인프라 전환을 꼽았습니다. 전력수요를 충족하면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병행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정책위원은 분산형 재생에너지 기반의 '데이터센터 지산지소(地産地消)'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밀집된 수도권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계통 여유가 있는 전남 등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RE100 데이터센터 구현을 촉구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규 데이터센터의 경우 재생에너지 확보를 의무화하고 전력계통영향평가 강화로 데이터센터 수도권 입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존 데이터센터에는 RE100 이행 계획 제출 의무화 및 이행점검 도입을 제시했습니다.
이 밖에도 ▲고효율 저전력 데이터센터 의무화 ▲ '인공지능기본법' 내 기후대응 반영 ▲ 녹색산업정책 연계를 통한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이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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