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비대면진료
(1) 일상 스며든 비대면진료…2년 만에 1000만명 이용
'손 안의 의사' 비대면진료
2년새 이용자 1000만 돌파
닥터나우 등 플랫폼 방문 급증
여야 막론하고 법제화는 더뎌
정부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비대면진료 플랫폼 방문자가 약 2년 만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 약국의 약 80%가 비대면진료 처방전을 접수하는 등 의료계 참여가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진료가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필수 의료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인공지능(AI) 통합 진료 플랫폼을 활용해 외국인 위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아산병원은 이 플랫폼으로 지난 2월 이후 1000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13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한 2023년 6월 이후 올해 4월까지 닥터나우, KB헬스케어 등 관련 플랫폼을 방문한 전체 이용자는 약 1105만 명이었다. 플랫폼을 통한 진료 요청 건수는 307만2336건, 진료받은 환자는 100만4302명이다.
비대면진료에 참여하는 의사와 약국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통해 처방전을 접수하는 약국은 1만9763곳으로 전국 약국의 78.1%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제휴 의사는 지난해 3월 1196명에서 1543명으로 늘었다. 환자의 만족도도 높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23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 환자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진료에 ‘보통 이상’으로 만족했다는 응답이 94.9%였다.
정부는 비대면진료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허용했다가 팬데믹 종료와 함께 2023년 6월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후 법제화가 안 돼 제도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청소년과 노인으로만 비대면진료 대상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규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선재원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회장은 “국민에게 일상으로 자리 잡은 서비스를 다시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확 바뀐 의료 환경…'약 수령'은 여전히 불편
인천에 사는 지모군(16)은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후쿠야마형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맞벌이 직장 생활을 하는 지군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병원을 찾을 때마다 번갈아가며 연차를 내야 했다. 서울대병원이 2023년 희소질환자 비대면진료 시스템을 구축한 뒤 지군과 부모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군이 집에서 활동보조사의 도움으로 화상전화 진료를 받으면서 부모도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게 됐다.
◇ 여행 중에도 언제든 진료
13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진료가 플랫폼 이용자 1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국민의 일상으로 파고들면서 의료 환경을 바꾸고 있다. 섬 벽지 주민과 노인, 지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업무와 육아, 여행 중인 상황에서도 정상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경기도 양평을 여행하다가 네 살짜리 아들이 심한 감기 증상을 보였다. 근처에 운영 중인 소아청소년과가 없어 비대면진료를 받은 후 온라인 처방전으로 인근 약국에서 약을 구입했다. 김창경 도브의원 원장은 “환자가 차 안이나 군부대, 해외에 있을 때도 진료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한 노인 요양시설에서는 특히 비대면진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양보호사인 50대 B씨는 시설 노인이 주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을 미리 파악해 비대면진료를 예약하고 있다. B씨는 “일손이 부족해 매번 노인 환자와 동행하기 힘들었는데 비대면진료가 대안이 됐다”고 했다.
해외 환자도 비대면진료로 ‘K의료’를 접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월 도입한 비대면진료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1000건 이상의 외국인 환자 상담을 진행했다.
◇ 환자 만족도도 높아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보다 치료 효과가 높은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병원을 매번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가 자체 판단으로 약을 끊거나 과용하는 등 오남용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어서다. 김 원장은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활성화되며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수월해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주로 경증 환자가 이용했지만 점차 중증 환자도 사용을 늘리는 추세다. 희소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이모양(8·경기도)은 지난해 7월부터 열네 차례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았다. 한두 차례 검사를 제외한 대부분이 비대면진료였다. 이양의 어머니 C씨는 “비대면진료를 받으니 아이의 피로도가 크게 줄어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환자 만족도도 높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23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 환자 1500명과 의사 300명, 약사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환자의 82.5%는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만큼 안전하다’(50.1%), ‘대면진료보다 불안하지 않다’(32.4%)고 응답했다. 초반에 우려를 보인 의사와 약사들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84.7%, 약사의 67.0%가 비대면진료를 계속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 약 배송 허가는 숙제
다만 약 배송 서비스가 허용되지 않아 약을 수령하는 과정이 번거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성질환을 앓는 40대 남성 D씨는 최근 비대면진료를 받은 뒤 인근 약국 6곳에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약을 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약국에서 재고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료 수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장)는 “대학병원이 비대면진료를 하면 대면진료보다 수가가 낮아지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영애/이우상/이지현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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