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
영드 ‘갱스 오브 런던 3’ 연출
아시아인 최초로 맡은 김홍선
영국 인기 드라마 시리즈 ‘갱스 오브 런던’ 시즌3의 리드 디렉터를 맡은 김홍선 감독은 해외에 나가면서 높아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크게 체감했다고 밝혔다. 영국 제작진이 김 감독의 자율성을 존중해준 덕에 그만의 작업 스타일을 드라마에 녹여냈다. 웨이브 제공
다른 나라와 대비되는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꼽아보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고 이들의 관계성이 두드러지며, 각 회차의 엔딩 장면이 ‘다음 회차’를 누르지 않을 수 없도록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점은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TV 채널에서 K드라마의 흔적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 3’에서다.
‘갱스 오브 런던’ 시리즈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마약 갱단들의 이권 다툼을 그린 드라마다. 시즌3는 펜타닐이 섞인 코카인이 시내에 퍼지면서 런던 전역이 위험에 빠지고, 과거 언더커버 경찰이자 현재는 암흑가의 핵심 인물이 된 엘리엇 카터(소페 디리수)가 이 사건의 주모자란 누명을 쓰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시리즈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다수의 수상을 했고, 2020년 공개된 시즌1은 일주일 만에 223만명 이상이 시청할 정도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28일 웨이브에서 단독 공개됐다.
촬영 현장에서의 김 감독. 웨이브 제공
영화 ‘기술자들’, ‘변신’, ‘늑대사냥’ 등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은 아시아 감독 최초로 ‘갱스 오브 런던’ 시리즈의 리드 디렉터를 맡았다. 시즌 전체의 연출 방향과 스타일을 총괄했고, 총 8개 회차 가운데 1·2·7·8화는 그가 연출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포스트타워에서 김 감독을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감독은 “‘갱스 오브 런던’이 잔혹하고 센 액션을 특징으로 하지만, (제작사 측에서는) ‘늑대사냥’의 스토리텔링, 캐릭터, 색감, 액션 같은 걸 더 좋아하더라”며 “그래서 드라마의 팬들이 좋아하는 잔혹한 액션, 기존의 거칠고 영화적인 느낌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화면에 색감을 더 쓰고, 캐릭터가 대비되게끔 하면서 저만의 색을 추가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회차의 내용을 중간에 끊으며 ‘다음 회차’로 손길이 가도록 하고, 액션에도 감정을 담으며 기존 시리즈들과는 다른, 김 감독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특별출연한 배우 임주환이 영국 갱단에게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모습. 웨이브 제공
또 기존 시즌과 달리, 시리즈에 대중성을 불어넣기 위해 런던 시내의 모습을 담았다. 시즌1, 2가 진짜 갱들만 활동할 법한 뒷골목이나 아주 비싼 건물들만 담아냈다면, 시즌3은 많은 사람이 생활하는 어퍼사이드, 강변 공원, 시내 한복판의 주택가 등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 감독은 “런던에 사는 사람들이 드라마에 아는 공간이 나오면 호감이나 관심을 더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며 “생각보다 영국 날씨가 좋아서 햇빛이 좋을 때의 장면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국 배우인 신승환, 임주환이 1화에 한국 갱단으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극 중 지크(앤드루 고지)라는 새 인물을 한국인 배우로 섭외하려 했으나 대본이 수정되면서 한국인 캐스팅이 무산됐고, 그 아쉬움을 한국 갱단으로 풀었다. 김 감독은 “시즌2에 한국 갱이 나오는 시퀀스가 있는데, 거기 나오는 한국어가 정확한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22년 선보인 범죄 누아르 영화 ‘늑대사냥’을 통해 ‘갱스 오브 런던’ 시리즈의 연출 기회를 얻게 됐다. ‘늑대사냥’은 당시 토론토국제영화제, 시체스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토론토에서 할리우드 관계자를 만나며 유명 에이전시인 WME와 계약했다. 이후 ‘늑대사냥’을 흥미롭게 봤던 프로듀서를 통해 ‘갱스 오브 런던’과 연이 닿았고, 경쟁을 거쳐 리드 디렉터 자리를 따냈다.
갱단 내에서 벌어진 총격전. 웨이브 제공
영국에서 매주 공개되는 드라마 순위에도 한국 드라마가 두세 편씩 끼어있을 만큼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김 감독은 작업 과정에서 그 위상을 여러 번 느꼈다고 한다. 그는 “현지에서 한국 감독, 배우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느껴졌다. 해외를 나가보니 그게 더 체감됐다”며 “임권택,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같이 훌륭한 감독님들 덕분에 한국 문화가 인정받게 된 만큼, 한국 문화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더 조심했다. 영국에서 일하는 19개월 동안 일만 하고 집에만 있느라 관광도 안 했다”고 웃었다.
김 감독은 영국 촬영 현장에 한국의 회식 문화를 도입하며 K컬처를 보여준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스태프들을) 한국 식당에 데려가서 고기와 소주를 먹는 회식을 했다”며 “다들 한 번도 회식해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해외 제작진과의 첫 작업이었던 만큼 한국의 제작방식과 몇 가지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을 9시간, 10시간, 11시간 중 하나를 선택해 진행하는 방식이나 현장 편집과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지 않는 점 등이 달랐다. 다만 이런 부분 외에 시스템상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모든 감독이나 스태프, 배우들이 영어만 된다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으니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며 “특히 유럽엔 동양인 배우가 별로 없어서 동양인 배우를 캐스팅하려 해도 풀이 상당히 작았다. 영어만 잘 할 수 있다면 한국 배우들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주인공 엘리엇의 가족이 탄 차량이 폭발하는 장면. 웨이브 제공
이번 작업은 김 감독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현장에서 영어로 소통하며 영어 실력이 늘었고, 좋은 인간관계와 사람을 얻었다. 또 여러 피부색의 인종을 한 화면에 이질감 없이 담아낼 수 있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김 감독은 “동양인 위주로 찍는 우리나라와 달리 흑인, 백인, 동양인을 동시에 찍다 보니 풀샷에서 모든 인종이 다 잘 보이게끔 촬영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여전히 감독으로서의 자신은 배우고 찾아 나가야 할 길이 먼 ‘젊은 감독’이라고 짚었다.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제가 어리다는 생각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항상 데뷔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중”이라며 “40대 후반이니까 아직 감독으로서는 스타일을 말하기엔 어린 나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변화하면서 저만의 색을 찾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김 감독은 이번 ‘갱스 오브 런던’ 시리즈의 연출 경험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영어 프로젝트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정해진 차기작은 없지만 여러 작품의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한 번 더 영어 프로젝트를 하고 한국 작품을 하려 한다. 우리나라 작품이 잘 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웃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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