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식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지사장
세계 경제질서를 움직이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에 반도체가 있다.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전자부품이 아닌 국가 안보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반도체 기술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의 핵심축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 지형을 바꿀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의 인공지능(AI) 패러다임 전환이다. 지금까지 AI 반도체는 모델 학습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제는 실시간 의사결정을 위한 추론 능력이 화두다. 특히 GPU에서 NPU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네트워크 말단 디바이스에 AI 기능을 탑재하는 '엣지 AI'가 확산되고 있다. 엣지 AI는 발생 지점에서 데이터를 직접 처리해 지연 없는 응답, 강화된 보안, 데이터센터 부하 감소라는 삼중 효과를 가져온다. TinyML과 같은 경량 모델을 채택한 NPU는 데이터센터 GPU보다 최대 100배 이상 전력효율이 높다. 일상 기기에 엣지 AI가 탑재되는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둘째, 차세대 반도체 소재와 양자 컴퓨팅의 부상이다.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신소재 개발은 반도체 성능 혁신의 핵심이다. 탄화규소(SiC)는 고온·고전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도 초고속 데이터 전송과 초저전력 소비로 AI 데이터센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론에 머물던 양자 컴퓨팅도 상용화 문턱에 도달했다. 기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일부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양자 컴퓨팅에 활용할 수 있으며, FD-SOI 공정 기술이 이 과정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셋째, 일상 영역으로 확장되는 반도체 기술이다. 전기차 기술의 경우 반도체, 센서, 소프트웨어(SW)가 주행 경험과 안전 운행의 핵심 요소가 됐다. 전기차의 기능 혁신은 지속되고 배터리 효율, 전력관리, 충전 인프라 발전으로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바이오센서는 측정 지표 다양화, 초소형화, 저비용화, 전력효율 향상을 통해 웨어러블 기기의 생체신호 모니터링을 일상화하고 있다. 엣지 AI와 결합하면 의료기관 방문 없이도 진단이 가능해져 의료 시스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넷째, 첨단 분야인 디지털 트윈과 우주 산업의 성장이다.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 대상을 가상공간에 정밀하게 복제해 모델링, 시뮬레이션, 최적화를 가능케 한다. 사물인터넷(IoT)과 엣지 AI 센서를 통한 정밀한 데이터 수집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센서 기술 발전으로 스마트시티부터 산업 현장까지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우주 기술과 위성 산업 성장세도 가파르다. 현재 약 9000개 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으며, 2035년에는 6만개로 증가할 전망이다. 저궤도 위성을 통한 글로벌 통신망 구축과 우주 탐사를 통한 원시·희귀 광물 발굴은 기술 혁신을 이끌 것이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아보면, 예측을 뛰어넘는 혁신이 항상 이뤄졌다. 앞서 살펴본 핵심 동력은 반도체 산업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지만, 어떤 예측도 완벽할 수 없다. 일부는 예상보다 빠르게 실현될 것이고, 일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주시하며 신속하게 방향을 설정해야만 미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위 기술들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상황에서, 기술 주도권 확보는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됐다.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이 아닌 국가 안보와 경제 주권의 핵심 자산이다. 지금의 결정과 투자가 향후 수십 년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박준식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지사장 promotion.korea@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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