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 20%를 돌파했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초고령사회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여러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다중 만성질환’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약물을 동시에 복용해야 하는 ‘다제약물 복용’(polypharmacy)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복약 순응도의 저하 등 복합적인 문제가 고령층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의학은 고령자 건강 관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한방의료 이용 실태조사’의 2024년 결과를 보면, 고령층에서 한의학 치료 이용률(60세 이상 86.6%)은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침, 뜸 등 비약물 기반의 한방 치료는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줄이며, 다양한 만성질환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선호를 넘어, 한의학이 과학기술과 융합해 실제적인 건강 관리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의 디지털 주치의’이다. 여기서 디지털 주치의는 환자의 생체신호와 생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를 수행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을 의미한다. 특히 한의학적 진단 및 비약물 요법과 연계할 경우, 다제약물 복용을 줄이면서도 건강을 유지·개선하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양명(水陽明) 경락 부위에 착용하는 스마트링을 통해 심박수, 활동량, 심박변이도(HRV) 및 이들 생체신호로 해석한 한의 맥상(脈象) 정보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확보한 안색 정보를 개인건강기록(PHR) 서버로 전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데이터는 서버에 이미 구축된 멀티모달 한의 빅데이터와 한의학 연구논문, 처방 기록 등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AI가 분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체질, 증상,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 맞춤형 한의학적 처방과 건강 관리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한의 디지털 주치의의 핵심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 이러한 AI 기반의 한의학 융합 가능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활용한 사상체질 안면 분석 연구에서는 안면 영상의 특징을 바탕으로 체질을 분류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한의사의 진단을 보조할 수 있었다.
또한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과 딥러닝 분석 기술의 일종인 ‘합성곱 신경망’(CNN)을 결합해 한의학적 형질과 연관된 유전 지표 발굴에 활용한 연구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전통 한의학이 현대의 과학기술 위에서 더욱 정교하고 개별화된 의료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초고령사회의 복잡한 건강 문제는 단일 해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AI와 한의학의 융합은 그 자체로 다학제적 해법이며, 디지털 주치의라는 개념은 고령자 중심의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전통의 지혜와 첨단기술이 만나, 이제 한의학은 더욱 정밀하고 실용적인 미래의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시우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장
이시우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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