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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를 섣불리 도입했을 경우에는 없는 집에서만 군대 간다, 이런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고 저는 봐요. 그런 데다가 최근에 라트비아나 몇몇 나라에서, 대만도 그렇고요. 징병제 대신에 모병제 전환 시도를 했었다가 다시 상황이 어려워져서 징병제로 돌린 경우가 더 많습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홍준표 당시 후보와의 토론 중 (2025.4.25.)
이재명 민주당은 의무복무는 10개월로 줄이고 36개월 근무 기간으로 모병을 두면 된다면서, 이걸 '선택적 모병제'니, '선택적 징집제'니 운운합니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그런 모병제는 우리의 선택지 밖입니다. 북한 지상군은 우리 3배 규모입니다. 게다가 국제적 안보 환경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2023년 징병제를 부활시킨 라트비아가 대표 사례입니다.
군인의 수가 부족해 징병제로 되돌아온 사례들도 세계적으로도 이미 여럿 있습니다. 대만은 2018년 군 의무복무기간을 1년에서 4개월로 단축했다가, 병력 감소를 해결하지 못하고 2024년 복무기간을 1년으로 되돌렸습니다.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를 폐지했지만, 6년간 복무할 것으로 예상한 모병 군인들이 3~4년 내로 군을 떠나 이직하는 일이 빈번해져 결국 2018년 징병제로 되돌렸습니다.
이런 사례들만 봐도, '선택적 모병제'를 졸속으로 도입하면 몇 년 만에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공정하겠습니까.
-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페이스북 게시글 (2025.4.19.)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25일 같은 당 홍준표 후보와의 경선 토론에서 모병제를 언급했다. 모병제를 급하게 도입하면 “없는 집에서만 군대 간다”고 말한 게 핵심이다.
한동훈 후보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주장을 내놨었다. 남북 관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군인 수 부족 등 문제로 징병제가 필요하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택적 모병제’를 비판했다. 한 후보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모병제 섣불리 도입하면 ‘없는 집’에서만 군대 간다?
모병제가 도입되면 소득 수준이 낮은, 즉 가난한 사람들만 입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병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의 경우, 국방부를 비롯한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신입 병사들 대다수가 중산층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어서다.
미국 국방부는 1973년 모병제가 전면 도입된 뒤로 의회에 ‘군복무 인구 대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미국 군인의 인구통계학적 특성과 군 복무와 관련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가장 최신판인 2019년 보고서를 살펴봤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신병들의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소득분위를 조사한 결과, 전체 5분위 중 2~4분위 비율이 소득분위마다 모두 20%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소득이 낮거나 높은 1분위와 5분위를 제외한, 이른바 ‘중산층’ 지역 출신이 60%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에는 “소득이 낮은 지역일수록 신병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적은 경향이 있다”고 돼 있다.
미국 외교협회(CFR)가 공개한 2018년 기준 ‘미군 인구 통계’ 자료에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됐다. “군인들 대부분이 중산층 지역 출신”이라고 결론지었다. 신병들 출신 지역의 가구소득이 전체 5개 소득분위 중 2~4분위에 집중된 것으로 나왔다. 3개 소득분위 전부 각각 20% 이상을 차지했다.
다만 미국 국방부와 미국 외교협회, 두 기관 모두 이 수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신병들의 개별 가구소득이 아닌 출신 지역 소득 수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중산층 소득분위가 과대평가되고 양극단의 소득분위가 과소평가돼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반대의 결론을 낸 자료들도 있다.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샌델이 2010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인용된 수치가 그 사례다. 모병제 화두가 될 때마다 국내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통계이기도 하다.
마이클 샌델이 자신의 책에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징병제가 시행되던)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 졸업생 750명 중 과반수인 450명이 졸업 후 군에 입대했다. (모병제가 전면 도입된) 2006년 졸업생 1,108명 가운데 입대한 사람은 아홉 명에 그쳤다.” 그는 이 통계가 미국 상류층의 군 복무 감소 실태를 다룬 책 <AWOL: The Unexcused Absence of America's Upper Classes from Military Service>(무단이탈)에 담겨 있다고 적었다.
또 마이클 샌델은 “최근 몇 년간 미국 사회에서 가장 특권을 누린 젊은이들이 군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2%의 국회의원만이 군 복무 중인 자녀가 있다, 이라크에서 미국을 위해 무기를 든 대다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라고 책에서 부연 설명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매체로 분류되는 <The American Conservative>의 2017년 기사에도 유사한 통계가 나온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자신의 저서에 담긴 수치를 인용한 문장이다. 해당 기사에는 “미국 인구의 단 1%만이 나머지 99%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그 1%는 아이비리그, 월가, 부유한 미국인 출신 등이 아닌 웨스트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미시시피 등 덜 부유한 지역에서 온다. 현재 육군은 2천5백만 명이 넘는 대도시 출신보다 인구 480만 명의 앨라배마주에서 더 많은 병력을 충당하고 있다. 육군의 40%는 구 남부 7개 주 출신”이라고 적혀 있다.
역시 모병제를 채택한 호주의 경우를 보면 군 복무자들의 가구소득이 전체 호주 내 중위 가구소득보다 높았다. 호주 통계청 2021년 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호주 정규 군 복무자의 일주일당 중위 가구소득은 1,422달러로 전체 호주 중위 가구소득 1,203달러보다 약 18%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모병제를 택한 캐나다의 경우, 토론토대 출판사를 통해 발표된 2013~2014년 캐나다 신병 3,465명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볼 필요가 있다. 43% 정도가 가구소득 5만 달러 미만인 저소득층이었지만,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 27.4%를 비롯해 중산층 이상 출신도 많았다.
따라서 모병제를 도입했을 때 한동훈 후보의 말처럼 “없는 집”에서만 입대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직업의 안전성, 전문 기술 습득, 애국심 등 입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국가와 시기별로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한 후보 발언이 사실인지 여부는 ‘판단 유보’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모병제 전환했다가 다시 징병제로 돌린 경우 많아?
사실이다. 2022년 1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모병제 도입 및 징병제 재도입 국가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들어 냉전 종식과 징병제 인식 악화 등으로, 모병제로 전환했던 유럽 국가 중에 징병제를 재도입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러시아와 인접국 사이 무력 충돌 발생, 모병제를 통한 병력 충원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2010년대 들어 징병제 국가는 증가 추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페이스북 등에서 사례로 든 라트비아와 스웨덴도 여기에 포함된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 <모병제 도입 및 징병제 재도입 국가 비교 분석> 보고서에 기재된 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의하면 라트비아는 2007년에 모병제를 도입했지만, 현재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2022년 7월에 징병제 재도입 계획을 발표할 때 라트비아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증대됐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2022년 8월 미국 국방부 장관이 라트비아를 방문해 “필요시 미군 병력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스웨덴이 징병제로 전환한 계기도 거의 비슷하다. 2010년 모병제를 도입했던 스웨덴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로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며 2018년 징병제로 전환했다. 스웨덴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신원 불명의 잠수함이 출몰해, 인근 발트국가 등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추가로 병력 모집에 난항을 겪은 것도 스웨덴의 징병제 전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2010년 모병제를 도입한 당시 목표한 모집 인원에 절반도 지원하지 않아, 그 뒤 2014년까지 총 1만 6천 명의 병사를 모집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대만의 병역 제도는 2018년부터 징병제와 모병제를 ‘투 트랙’으로 유지해 왔다. 대다수 청년이 기존에 1년이었던 복무 기간에서 줄어든 4개월만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돼 ‘사실상 모병제’로 전환된 상태였다. 병무청이 발주해 작성된 2023년 연구논문 <군 개혁을 통한 인권 개선: 대만의 대체복무제도를 중심으로>에 기재된 바다.
그러나 대만 언론을 취재한 연합뉴스 등 여러 보도를 살펴보면, 대만은 지난해부터 복무 기간을 다시 1년으로 연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무력시위 등 군사적 압박이 증가하고 저출생 등으로 인한 병력 감소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만 정부가 여성 의무 복무제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들처럼 병력 충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남북한 관계 중심이 아니라 국제질서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대규모 병력이 우리나라에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어떤 병역 제도가 더 적절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선택적 모병제” 주장…‘여성 군 복무’ 관련 공약도 나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와 달리, 이번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상당수는 모병제 도입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저출생 문제로 청년 인구가 줄어들면서 병역자원의 감축 또한 불가피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 계간지에 실린 2023년 논문 <인구감소 시기 강한 국방을 위한 병역제도 설계>에 따르면, 20세 남성 인구는 2035년까지 21만~23만 명 선을 유지하다 2045년에는 13만 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셈이다. 현재 병역제도 등을 유지할 경우 2040년 군 규모는 최대 30만~35만 명까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기준 군 규모는 50만 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병역 대상자가 징집으로 군에 가거나 기술집약형 전투 부사관 모집에 응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혼합된 ‘선택적 모병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 2021년 대선 때도 거의 똑같은 공약을 냈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과거 자신의 SNS 등을 통해 “모병제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밝혔고 최근에도 여성 전문 군인 확대 등만을 공약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여성도 장교나 부사관이 아닌 일반 병사로 복무하도록 하겠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뉴스타파 박상희 sacha@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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