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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다큐로 본 수원 삼성 축구단과 서포터스
수원 삼성 서포터스인 프렌테 트리콜로가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화성 FC와의 경기에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 수원 삼성 축구단]
예능과 스포츠 등의 콘텐트를 송출하는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는 프로축구 K리그를 독점 중계하고 하이라이트 등을 제공한다. 쿠팡플레이 프로축구 코너에는 지난 3월부터 ‘ROAD TO ONE 나의 사랑 나의 수원’이라는 제목의 4부작 다큐멘터리가 걸려 있다. 2023 시즌 1부(K리그1) 꼴찌(12위)를 해 2부(K리그2)로 강등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1부 승격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만년 하위팀 선덜랜드를 죽을 때까지 응원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을 담은 ‘죽어도 선덜랜드’라는 다큐가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좀처럼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희망고문을 당하는 팬들을 소재로 한 ‘죽어도 자이언츠’가 있다.
수원 삼성 다큐는 지난해 5월 촬영에 들어갔다. 시즌 초반 5연패를 당하며 염기훈 감독이 사퇴하고 ‘수원의 푸른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변성환 감독이 부임하는 장면부터 다큐는 시작된다. 명문 구단의 몰락을 초래한 순혈주의, 끼리끼리 문화를 혁파하고자 무한경쟁 체제를 도입한 변 감독은 부임 후 11경기 연속 무패를 질주하며 승격의 꿈을 부풀린다. 그러나 초보 감독의 한계를 노출하며 하위권 팀에 잇따라 덜미를 잡혀 최종순위 6위로 승강 플레이오프 커트라인(5위)을 통과하지 못한다.
구단 망친 순혈주의 혁파하고 무한경쟁
카메라는 선수단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라커룸까지 들어간다. 전반 경기 내용에 크게 실망한 변 감독은 하프타임에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공 받는 게 무서워서 도망 다니는 니들이 수원 선수야?” “연습할 때 이렇게 했어? 왜 연습한 대로 안 하는 거야 씨?.”
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한 경기 한 경기 결과에 피가 마른다. 박경훈 단장, 박평식 사무국장, 이은호 홍보마케팅 팀장 등 프런트도 마찬가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ROAD TO ONE 나의 사랑 나의 수원' 스틸컷. 1부 승격 열망으로 뜨거웠던 2024년, 선수들과 서포터스 그리고 구단이 함께한 노력과 열정의 기록이다. [사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TV]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다큐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수원 삼성 서포터스다. 이들의 팀 사랑은 강고하고 영속적이다. 이들은 선수만큼이나 절박하게 승리를 위해 뛴다. 이기면 기뻐서 울고, 지면 속상해서 운다.
이 다큐를 제안하고 제작한 팀트웰브의 박정선 대표는 “내 팀을 갖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촬영 작업을 총괄한 킴보킴 감독은 “촬영팀을 셋으로 나눠 한 경기 또는 한 상황에 대해 선수단·프런트·서포터스가 각자 어떤 반응들을 보이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 결과 날 것 그대로의 진정성 있는 화면을 담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원 구단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박평식 국장은 “처음에는 구단에서 좀 부정적이었다. ‘2부로 강등돼 그룹 감사까지 받은 팀이 뭐 잘한 게 있다고 다큐를 찍나’ ‘우리의 치부를 보여줘야 하고 촬영으로 인해 선수단 경기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작품이 발표된 뒤에는 ‘진솔한 영상에 감동했다’ ‘2부 강등의 흑역사와 1부 복귀를 위한 분투가 담겨 수원 삼성의 서사가 더 풍성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박경훈 단장도 “사실 좀 더 노골적이었어도 됐다. 프리미어리그 다큐에는 감독과 선수가 서로 욕하고 싸우는 장면도 나온다”며 웃었다.
화성과의 경기에서 중원을 이끈 이규성. [사진 수원 삼성 축구단]
수원 삼성 서포터스 모임을 총괄하는 프렌테 트리콜로(Frente Tricolor)는 스페인어로 삼색전선(三色戰線)을 뜻한다. 수원 구단의 상징색인 청백적(靑白赤)으로 무장해 승리의 최전선을 지킨다는 의미다. 프렌테 트리콜로의 김한수 대표는 “회원을 공식적으로 집계하진 않지만 전국적으로 3만 명은 넘을 것”이라며 “2부로 강등된 뒤 오히려 회원이 늘고 원정 응원단 규모도 커졌다”고 말했다.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브라질 공격수 브루노 실바. [사진 수원 삼성 축구단]
김 대표는 “축구를 잘 모르는 분이 다큐를 봤다면 ‘이건 뭐지?’ 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을 위해 저렇게 뜨겁고 지속적으로 마음을 쏟는 게 가능한가 싶을 거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 호기심이 관심으로, 관심이 참여로 연결되는 게 서포터스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수원에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는 수원 삼성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 내가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수원의 지지자가 된 건 운명인 것 같다”고 답했다.
2부로 떨어진 수원 삼성은 역설적으로 K리그2의 ‘귀한 손님’이 됐다. 전국 어디든 수백~수천 명의 원정 응원단이 몰려와 열정적인 서포팅으로 경기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홈팀 구단주(지자체장이 많다)는 “저게 진짜 축구 응원 아니냐. 우리도 할 수 있나”라고 묻는다. K2에 대한 관심도, 입장 수입도, 지역 경기도 살아난다. 경기장 화장실과 라커룸 등 시설을 개보수 해 주는 곳도 생겼다. 박평식 국장은 “우리 구단의 존재 목적 중 하나인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모기업이 축구단 지원을 줄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팀 서사 풍성해지고 화려한 응원에 매료
지난해 삼성그룹 최고위층에서 “아무리 그래도 삼성이 운영하는 축구단이
2부에 있어서 되겠나”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축구단 지원이 확 늘었고, 브라질 3총사(브루노 실바·파울리뉴·세라핌)와 K1 출신 골잡이 일류첸코로 구성된 막강 공격편대가 완성됐다. 대신 창단 30주년인 올해는 무조건 승격해야 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지난 4월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이 차두리 감독의 화성 FC와 K리그2 8라운드를 펼쳤다. 전반에만 일류첸코-실바-세라핌이 연속골을 터뜨린 수원이 3-1로 완승했다. 외국인 용병도, 국내 선수도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5경기 연속 무패(3승2무)를 거둔 수원은 6위에서 4위로 점프했다.
프렌테 트리콜로의 서포팅도 불을 뿜었다. 빗속에서 이들은 경기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100분가량 진행된 경기에서 25곡의 응원가를 불렀는데 겹치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서포팅을 지휘한 김한수 대표는 “대부분 남미 축구장에서 부르는 노래에 가사만 우리 실정에 맞게 바꾼 것이다. 최근엔 장중한 유럽풍보다는 리듬감과 흥이 살아 있는 남미풍을 지향한다. 응원이 화려하고 재미있다 보니 여성·가족·초등학생 서포터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원 구단과 다큐 제작진은 ‘ROAD TO ONE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가슴 벅찬 승격의 순간으로 엔딩을 장식하고 싶은 게 이들의 마음이다. 설령 그렇게 안 된다 해도 수원 지지자들은 노래할 것이다. “이 사랑에 후회는 없다!”
정영재 칼럼니스트. 중앙일보·중앙SUNDAY 스포츠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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