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석학 1호 이영희 성대 HCR석좌교수
2018년부터 세계 1% 과학자로 꼽혀
2차원 물질로 전자소자, 태양전지 개발 중
이영희 성균관대 HCR 좌교수는 지난 24일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연구가 가장 좋다"며 "세상을 바꾸는 기술 하나 만들면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물리학회
연구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반데르발스 물질까지, 수십 년간 이어온 연구 여정의 동력은 의외로 단순했다. 지난 2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영희 교수는 “재밌으니까 계속한다”고 말했다.
그의 석좌교수직에 붙은 HCR은 글로벌 학술정보 업체인 클래리베이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s)’란 말의 약자다. 논문이 인용된 횟수가 세계에서 상위 1%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2018년 이후 매년 세계 1% 과학자 HCR에 선정됐다.
이 교수는 2차원 신소재 분야의 상위 1% 연구자다. 특히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 연구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은 모두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처럼 연결된 구조를 가진 물질이다. 그래핀은 평면 구조이고, 탄소나노튜브는 그래핀을 말아 만든 원통이다. 둘 다 강하면서도 전기 전도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이 교수는 2005년 한국연구재단과 교육부로부터 국가석학 1호로 선정됐다. 최근까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을 이끌며 우수한 연구 성과를 꾸준히 냈다. 그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2차원 물질인 ‘반데르발스 물질’을 주제로 그동안 연과 성과를 소개했다.
분자 사이에는 전자의 음전하가 양전하를 유도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는데, 이를 반데르발스 힘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흑연은 그래핀 여러 층이 붙어 있는 형태인데, 약한 힘으로 붙어 있다”며 “이게 바로 반데르발스 힘이고 이런 물질들을 반데르발스 물질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래핀을 연구하다 흑연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반데르발스 물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단층일 때와 덩어리일 때 성질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물리현상이 막 나오는 거죠. 2차원 물질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한때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탄소나노튜브는 차세대 전기전자 소재로 과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반도체 소자를 만들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조립해 장치를 만들기도 어려웠고, 수율도 낮았다. 결국 2차원 물질로 방향을 틀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2차원 물질의 연구도 처음엔 잘 풀리지 않았죠. 하지만 돌아보니, 그때의 전환이 지금까지 오게 만든 결정이었어요”
이영희 성균관대 HCR 석좌교수는 지난 2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반데르발스 물질에 대해기조 강연을 했다./한국물리학회
이 교수는 오랜 기간 동안 반데르발스 물질을 연구했지만, 아직도 반도체 소자로 활용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접촉 저항’ 문제다. 반도체 소자와 금속 사이 연결이 매끄럽지 않으면 전류가 잘 흐르지 않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수도관과 수도꼭지를 연결할 때 틈이 생기면 물이 새는 것과 같다.
이 교수는 “전류를 잘 흐르게 하려면, 양쪽의 에너지 수준을 맞춰야 한다”며 “2차원 물질은 물질마다 이 값이 다 달라서, 맞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 전압으로 반데르발스 물질의 에너지 수준을 조정하면 접촉 저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교수는 “2차원 물질로 실리콘보다 좋은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외에 태양전지가 빛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효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기존 물질에서는 태양전지 효율이 34%가 한계라고 봤다”며 “2차원 물질에서는 그 벽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축은 ‘스핀 소자’ 개발이다. 스핀은 미시세계에 통하는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운동과 무관한 고유의 각운동량을 말한다. 스핀 소자는 반도체처럼 전자의 이동으로 작동하지 않고 전자의 스핀을 이용해 낮은 전력으로 작동한다. 이 교수 연구진은 스핀 소자로 사용할 수 있는 2차원 물질을 처음으로 찾았고, 지금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교수의 연구 중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다.
이 교수는 취미가 많다고 했다. 유도 선수 출신이라 운동을 좋아한다. 오토바이를 탄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연구라고 했다. “좋아서 하는 거예요. 연구 안 하면 재미가 없어요.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하나 묻지만, 연구하기로 한 이상은 갈 데까지 가는 거예요.” 이 교수는 최종 목표를 묻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 하나만 만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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