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광섬유케이블 인프라 활용
위성-극저온 활용하는 기술 대신 영하 30도서 작동하는 APD 활용
254㎞ 거리서 신호 전송 성공
현재 상용 통신망 환경에도 적합…“양자암호통신 상용화 앞당겼다”
차세대 통신 기술인 양자암호통신은 누군가 도청하려고 하면 사용자가 이를 바로 감지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 해킹이나 도청이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 양자암호통신은 이론적으로 도청이 불가능한 ‘완벽 보안’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통신 기술이다. 과학자들이 고가의 장비 없이 수백 km 거리에서 상용 통신망을 활용해 양자암호통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실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뤄 양자통신 상용화를 가장 현실적으로 앞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미르코 피탈루가 영국 도시바 유럽 케임브리지연구소 연구원 팀은 독일에서 상용 광섬유케이블을 통해 254km 거리에서 ‘양자 키 분배(QKD)’를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 결과를 23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QKD는 두 사용자가 안전한 암호화 키를 나눠 갖는 방식의 암호 기술이다. 물리적 상태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양자 상태를 활용한다. 누군가 도청하려고 하면 양자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이를 바로 감지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통신 선로상에서 해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기존 양자암호통신 경제적 문제 해결
앞서 중국이 3월 초소형 위성을 이용해 1만2900km 떨어진 곳끼리 QKD를 구현했다고 발표했지만 일상적으로 양자암호통신이 가능한 기술로 보기는 어렵다. 위성 QKD는 위성이 가시권에 있을 때만 작동하고 구름이 끼면 통신이 불가능해지는 등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용 위성과 지상국도 건설해야 해 활용이 제한적이고 인프라 구축 비용도 많이 든다.
상용 통신 인프라인 광섬유케이블을 사용하는 QKD는 24시간 지속적인 연결이 가능하고 경제적이어서 민간 활용이 용이한 양자암호통신 기술이다. 문제는 다른 신호들도 함께 전송돼 양자화된 신호에 간섭을 일으켜 노이즈(잡음)가 발생하기 쉽고 온도 변화와 진동 등 외부 요인에도 민감하다는 점이다. 암호 정보가 담긴 광자(빛의 입자)를 검출할 때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다는 점도 상용화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기존에는 주로 초전도 나노와이어 단일광자검출기(SNSPD)를 사용했다. 구동할 때 섭씨 영하 270도의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다. 김용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기술연구단장은 “SNSPD는 검출 효율이 80% 이상으로 높고 노이즈가 적지만 크기가 크고 한 대에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대신 섭씨 영하 30도에서도 작동하는 애벌런치 광다이오드(APD)를 검출기로 활용했다. APD는 SNSPD와 비교해 광자 검출 효율이 10∼20%로 낮고 노이즈도 많지만 별도의 극저온 냉각 장치가 필요 없고 가격이 SNSPD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경제적이다. 현재 상용 통신망 환경에도 훨씬 적합하다.
연구팀은 광섬유케이블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양자신호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오프밴드 위상 안정화’라는 기술을 활용해 APD의 단점을 극복하고 신호 손실률을 줄였다. 이를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케일, 키르히펠트 세 곳의 데이터센터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54km 거리에서 상용 광섬유케이블로 QKD를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 “양자암호통신 상용화 앞당긴 연구”
이번 연구 결과는 실용적인 고성능 양자암호통신과 네트워킹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진행된 양자암호통신 연구가 보통 성능 한계를 시험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이번 연구는 상용 통신망의 실제 운영 환경 조건에서 QKD를 구현하며 확장 가능성에 중점을 뒀다.
연구팀이 시연한 QKD는 초당 110비트(bit·정보의 단위)의 통신 속도를 달성했다. 기존 연구와 비교해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훨씬 경제적인 APD 검출기로 유사한 성능을 달성한 것이 특징이다. 앞서 미국과 중국에서 진행된 고성능 장거리 QKD 시연은 대부분 극저온 냉각 장치와 SNSPD 검출기가 사용됐다.
김 단장은 “초당 110비트면 상용 암호화 기술인 AES-256 키를 몇 초마다 갱신하거나 일회용 패드 암호를 구현하기 충분한 속도”라며 “실제 상용 인프라에서 작동하는 양자 네트워크 구현에 가장 가까운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 결과는 절대적인 전송 거리나 통신 속도보다는 실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뤄 양자암호통신 상용화를 현실적으로 앞당겼다”고 평가했다.
양자암호통신 |
물리적 상태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양자 상태를 활용한 차세대 통신 기술. 대표적인 기술인 양자 키 분배(QKD)의 경우 누군가 도청하려고 하면 양자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완벽 보안’을 구현할 수 있다. |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