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방송·문화]
스톱모션 애니 ‘달팽이의 회고록’
CG, AI 없이 8년간 수작업 제작
각종 영화제 15개 수상… 30일 개봉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내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왔던 애덤 엘리어트 감독은 ‘달팽이의 회고록’에서 불행과 불운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첨단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8년간 인간의 손으로 만든 7000여개의 오브제는 작품에 온기를 더한다. 해피송 제공
살다 보면 불행과 불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내게만 수많은 불행이 오는 것 같고, 이 세상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을 때, 우리는 스스로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자주 잊곤 한다. 살아오는 동안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애초에 잠겨 있지 않았던 그 감옥을 스스로 걸어 나오라고.
‘하비 크럼펫’(2003), ‘메리와 맥스’(2011)로 아카데미, 베를린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애덤 엘리어트 감독의 신작 ‘달팽이의 회고록’이 오는 30일 개봉한다. 엘리어트 감독은 세상의 온갖 불행과 불운을 그러안은 듯한 주인공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내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왔다.
‘달팽이의 회고록’은 이어지는 불운한 일들 속에서 자기만의 껍데기에 갇힌 주인공 그레이스가 스스로 그 껍데기를 깨고 나와 홀로 서는 성장 과정을 담은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그레이스와 쌍둥이인 길버트는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지만, 부모님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면서 각자 다른 집으로 입양된다. 그레이스는 늘 자신을 보호해주던 길버트가 사라지면서 점점 사람들과 담을 쌓고, 유일하게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달팽이 관련 소품들을 모으며 자신만의 성에 고립된다.
늘 자기 삶엔 불행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그레이스는 괴짜 할머니 핑키의 유언을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레이스는 어린 시절 평온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었고, 길버트와 헤어진 후에도 핑키와 다양한 일을 하며 즐거웠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이제 너도 그 껍질에서 나올 차례야. 물론 고통도 있겠지만, 그게 인생이란다. 당당하게 맞서렴. 용감하게”라는 핑키의 유언을 실천에 옮긴다.
점토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주는 위로는 인간이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해내는 것과 같은 울림을 준다. 영화 속 주인공이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릴 땐 관객의 마음에도 파동이 인다. 이는 컴퓨터그래픽(CG) 및 인공지능(AI) 작업의 개입 없이 100% 인간의 손으로 만든 오브제와 세트로 제작돼 가능한 일이었다. 투박해 보이는 인형들이 오히려 관객의 마음에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장장 8년에 걸쳐 완성된 ‘달팽이의 회고록’은 7000여개의 오브제와 200개가 넘는 세트, 이를 활용해 촬영한 총 13만5000장의 사진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을 제작한 애덤 엘리어트 감독. 해피송 제공
엘리어트 감독은 “그레이스와 길버트, 핑키, 그 외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제는 그저 점토로 만든 작은 덩어리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팀과 저에게 그들은 실재하는 인물들”이라며 “스톱모션이라는 마법을 통해 이 작은 생명들이 관객 여러분께 의미와 기쁨,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영화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는 ‘달팽이의 회고록’에 수많은 상을 안겼다. 지난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처음 공개된 ‘달팽이의 회고록’은 영화제의 대상인 크리스탈 작품상과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애니메이션 대상, 런던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최우수 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열린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시상식에선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15회 수상, 70회 노미네이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러닝타임 94분, 15세 이상 관람가.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