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최근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인공지능(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AI 핵심 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소 5만 개 이상 확보하고,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과 AI 단과대학 설립을 통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모든 국민이 선진국 수준의 AI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전 세계 73개국의 ‘AI 성숙도’를 분석했는데, 한국은 상위 10%인 ‘AI 선도국(Pioneer)’에 들지 못하고 그 아래의 ‘AI 2군’ 국가로 평가받았다. AI 역량이 경제적 번영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를 위한 핵심기술로 부상하는 시대에 유력 대선 후보가 ‘K-AI 비전’을 첫 번째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 후보의 K-AI 비전 선포를 보면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첫째, 국민 모두가 무상으로 사용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가 과연 가능할까? AI 분야는 글로벌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을 위해 분초를 다투며 경쟁하는 산업이다. 막대한 투자는 물론 R&D에 엄청난 인력을 투입해야만 선진국 수준의 AI 개발이 가능하다. 이처럼 치열한 시장에서 ‘전 국민 AI 무상 서비스’를 위해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해 AI를 추진한다는 발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 후보는 과거 경기지사 시절에 추진했던 공공 배달앱인 ‘배달특급’ 서비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과도한 수수료와 광고비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공공 디지털 SOC 사업’으로 추진했던 ‘배달특급’은 민간과의 경쟁에서 밀려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배달 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AI 산업에서 정부가 주도해 AI 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K-AI 비전’의 성공을 위해 ‘반도체특별법’과 ‘탈원전정책’에 대한 이 후보의 정책 기조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반도체는 AI를 위한 핵심 산업이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에 성공한 반도체특별법이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때문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때 고소득 연구직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 적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던 이 후보는 지지층인 민노총의 반발이 커지자 입장을 바꿨다. 전기를 먹는 하마로 알려진 AI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깨끗한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정책도 무척 중요하다. AI로 인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최근 많은 선진국이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고 있는데, 이 후보도 AI를 위해 에너지 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혁신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 후보가 진정으로 ‘K-AI 시대’를 열기 원한다면 정부 주도의 AI 개발이 아닌 민간 중심의 기술 혁신을 지향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반도체특별법과 탈원전정책 등에서 융통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이 후보의 K-AI 비전이 단순히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한 비전이라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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