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독성평가 기술 급부상
FDA, 신약개발 동물실험 규정
100년 만에 단계적 폐지 선언
실험실 배양 장기 '오가노이드'
AI 기술 활용한 독성평가 관심
"식약처, 신속한 제도 정비 필요"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들이 충북 오송 동물실험센터에서 약물 실험을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의약품 개발 과정에 필요한 동물실험의 단계적 폐지를 선언하며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오가노이드’와 ‘인공지능(AI) 독성평가’ 기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관련 국내 바이오산업의 성장도 기대된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속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동물실험 폐지 시대 성큼
FDA는 지난 10일 신약 개발 과정에서 100년 가까이 유지해온 동물실험 의무 규정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규제 변화를 넘어 생명윤리와 과학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뤄진 정책 전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FDA는 사람에게 신약을 투여하기 전 설치류, 원숭이, 강아지, 토끼 등 다양한 동물을 이용한 독성 평가를 의무화해 왔다. 특히 항체치료제처럼 단백질 기반의 의약품은 면역 반응 등 복잡한 생리적 작용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동물실험 비중이 컸다. 그러나 동물실험은 원숭이 한 마리당 수억원이 드는 등 비용 부담이 크고 신약 개발 기간도 길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업계에선 FDA가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평가 기술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공식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AI 독성평가·오가노이드 부상
FDA는 우선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같은 항체치료제부터 동물실험 없이 독성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간, 심장, 면역기관 등 인체 장기를 모사한 실험실 배양 모델인 오가노이드를 활용하고, AI 독성 평가 기술 등 새로운 접근방법론(NAM)을 적극 도입할 방침이다.
세계 의약품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업계는 즉각 반응했다. NAM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한 것이다. AI 기반 약물 독성 예측 플랫폼을 갖춘 슈뢰딩거와 서타라, 하이브리드 독성 평가 기술을 활용하는 몰레큘러 디바이스와 레비티 등이 대표적인 수혜주가 됐다.
◇ 식약처 제도 정비가 관건
국내에서도 NAM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가노이드 개발 기업인 넥스트앤바이오, 오가노이드사이언스, 바이오솔빅스를 비롯해 인체 조직 및 장기를 모사하는 생체조직칩을 개발하는 멥스젠 등이 관련 기업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비상장사로 외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의 경우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가운데 여전히 동물실험 중심의 평가체계에 묶여 있어서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앞으로 FDA는 기술적으로 앞선 자국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비임상 평가 기준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면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AI 기술을 활용한 NAM 플랫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고도화된 AI 약물 독성 예측 플랫폼을 갖춘 기업이 없다.
업계는 NAM 시장이 성장하려면 식약처의 제도 기반 마련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식약처 관계자는 “다양한 대체시험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 정비를 추진 중이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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