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한국지도 반출 위기] ⑤ 지도엔 숙박·식당 예약, 택시 호출 등 여러 산업이 연계
[편집자주] '고산자' 김정호가 한국 팔도를 누비며 세밀한 국토 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 164년. 한국의 지도가 해외에 반출될 위기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은 안보를 이유로 고정밀 지도데이터 해외 반출을 막아왔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은 트럼프 행정부까지 등에 업고 지도데이터 반출을 압박하고 나섰다. 구글이 한국 지도에 집착하는 이유와 지도 생태계를 돌아본다.
구글맵 지도 데이터 반출에 관한 전문가 의견/그래픽=윤선정
"지도에 단순 지리데이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숙박·식당 예약, 택시 호출 등 여러 산업이 연계돼 있습니다. (해외 반출시) IT산업 생태계가 몰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4일 전문가들은 구글맵이 요구하는 1대 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쏟아냈다. 길찾기, 네비게이션 사업은 물론, 지도를 바탕으로 한 숙박·음식점 예약 등 관련 중소중견 벤처기업들이 모두 빅테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 구글이 한국에서 위치기반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게 되면 지도에 딸린 숙박·택시 등도 뺏길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도 데이터를 주더라도 지도 기반 다른 비즈니스는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도 "구글맵이 들어오면 관광 수익 감소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며 "지도는 게이트웨이(Gateway)고 이를 통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심리스(Seamless)' 체계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지도 자체만큼이나 숙박 예약 등 온라인 관광 서비스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은 소리 나는 대로 장소를 번역하거나 콩글리시를 사용하는 등 부실한 언어 지원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은 영안실을 'Yeongansil'로 번역한 네이버지도, 오른쪽은 영화관 '씨네시티(Cinecity)'를 'Ssinesiti'로 번역한 카카오맵이다./사진=네이버지도 및 카카오맵 캡처
이와 더불어 네이버(NAVER)와 카카오의 외국인 관광객 수요 흡수를 위한 노력도 요구했다.
현재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은 소리 나는 대로 장소를 번역하거나, 직역한 용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 지원이 부실하다. 영안실(mortuary)을 'Yeongansil'로 번역하거나, 영화관 '씨네시티(cinecity)'를 'ssinesiti'로 표기한다. 지원 언어도 네이버 지도는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4개, 카카오맵은 한국어와 영어 2개 뿐이다.
지도 연계 서비스도 이용이 제한된다. 유저들이 남긴 리뷰나 식당 공지, 주의사항 등은 번역되지 않고, 업데이트도 한국어 버전보다 늦다. 이 같은 지적에 네이버는 이날부터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현지인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비로컬(BE LOCAL)'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한시적 이벤트라는 한계가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UX(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외국인 친화적 설계가 부족하고 다국어 지원 범위가 제한적"이라며 "외국인 리뷰 기반 정보 제공, 해외 결제 연동, 대중교통 경로 최적화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구글맵 지도 반출 관련 신중한 의사결정을 요구했다. 여러 산업에 걸친 이슈인만큼 국가 차원의 대응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IT(지도)를 내주더라도 원자력이나 다른 산업에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범국가적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두고 실리적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이 사안은 단순한 관광·비즈니스 이슈를 넘어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지도 데이터의 레이어별 접근 제한, 군사 및 행정 보안시설의 마스킹, 구글과의 협정을 통한 민감 정보 필터링 등 기술·정책적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미국도 자국 기업 보안이나 데이터에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는 만큼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국 기업의 경쟁력 보호가 디지털 주권 확보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데이터 반출 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 연구용역이나 논문 지원 등을 통해 국민 인식을 파악하면 논의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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