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한국지도 반출 위기] ④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고정밀 지도를 요구
[편집자주] '고산자' 김정호가 한국 팔도를 누비며 세밀한 국토 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 164년. 한국의 지도가 해외에 반출될 위기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은 안보를 이유로 고정밀 지도데이터 해외 반출을 막아왔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은 트럼프 행정부까지 등에 업고 지도데이터 반출을 압박하고 나섰다. 구글이 한국 지도에 집착하는 이유와 지도 생태계를 돌아본다.
고정밀 지도 정보 요구하는 구글/그래픽=김지영
구글이 지도 사업을 위해 한국 정부에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정보를 요구하자 업계에서는 단순한 지도 사업 외에 다른 사업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도 고정밀 지도 정보를 반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구글 맵에서 도보 길 찾기 등 정밀 지도 서비스 이용이 불가한 국가는 한국과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러시아 등이다. 구글은 일부 공산 국가나 독재 국가를 제외하면 구글 맵이 주로 통용되는 만큼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구글은 어떤 국가에서도 데이터를 현지 서버에 보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국 정부가 근 20년간 국내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고 군사시설 등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하라는 등의 조건에 대해 구글은 듣지 않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1 대 2만5000 축척의 지도로도 충분히 해외 관광객을 위한 정밀 지도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용자 대상 지도 서비스 경쟁력은 축척의 정밀도가 아니라 POI(장소정보)와 최신화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이용자가 네이버지도 및 카카오맵을 구글 맵보다 선호하는 이유도 정밀해서가 아닌 POI 정보 확산과 최신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동일 축척으로 지도 서비스를 하는 구글과 애플을 비교했을 때 구글은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하지 않는 반면 애플은 부정확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1 대 2만5000 축척의 지도를 사용 중인 애플은 최근 한국에서만 불가능했던 '나의 찾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도 밝혔다. 정밀 지도가 없어 서비스할 수 없다는 구글의 주장과 배치된다.
또 구글의 주장처럼 북한 같은 공산국가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이스라엘 등 군사·외교적으로 민감한 국가도 고정밀 지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존에 정보를 공개했다가 전쟁을 겪게 된 나라들이 구글맵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례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텔레크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맵이 업데이트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군사 시설을 보여줬고,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이 이 시설을 특정해내면서 우크라이나가 구글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이 고정밀 지도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이유다.
구글은 국내의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해주는 대신, 해당 시설의 정확한 좌푯값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좌푯값을 외국 서버에 보관하다가 사이버 공격이라도 당하면 고스란히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서버가 외국에 있으면 한국 정부의 행정력도 제한된다.
구글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멕시코만을 'Gulf of America(미국만)'라고 표기했다. 구글이 국내 지도 정보를 가져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할 경우 한국 정부는 구글에 수정 요청을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구글이 받아들일 것이란 보장도 없다.
보안 시설 가림 처리도 절대적이지 않다. 2018년 벨기에 정부는 구글이 자국 군사 시설에 대한 위성 사진을 제대로 가림 처리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대만이 구글에 군사 시설을 가림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구글은 위성 지도를 임의로 편집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다"라며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하면서 막상 정보를 받으면 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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