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탄생 130년 만에 지구 밖에서도 촬영 성공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발사한 유인 우주선 ‘드래건’ 비행사가 우주에서 엑스레이로 자신의 뼈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엑스레이 사진(오른쪽 위)은 지구에서 찍은 것과 크게 차이가 없고 선명하다. 스페이스X 홈페이지 캡처
스페이스X ‘드래건’ 비행사들
가볍게 만든 엑스레이 장비로
고도 320㎞ 공중서 촬영 성공
달·화성, 인류 새 정착지 대비
무중력 상태서 신체 변화 관찰
건강 관리 위한 대응 가능해져
“나는 내 죽음을 보았다.” 1895년 12월22일 독일 과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의 부인이 자신의 손 사진을 보고 내뱉은 말이다. 이런 말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진에는 피부가 아니라 섬뜩한 느낌의 뼈가 찍혀 있었다. 죽은 뒤 뼈만 남은 자신의 모습을 살아있는 자신이 본 격이었다. 뢴트겐이 인류 최초로 엑스레이 촬영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현재까지도 엑스레이는 의료 현장의 주요 진단 수단이다. 뼈 등 인체 내부를 보는 데 전자기파 일종인 엑스레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엑스레이 촬영은 당연히 지구에서 이뤄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구 밖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달과 화성이 인류의 새 정착지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 밖으로 앞다퉈 나갈 날이 바짝 다가온 것이다. 특히 우주의 무중력이 뼈를 비롯한 인체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엑스레이 촬영이 꼭 필요해졌다.
그런데 엑스레이 장비는 크고 무겁다. 우주로 가지고 가려면 운송 비용이 많이 든다. 무중력과 자연적인 방사선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최근 이런 우려에 대한 답이 나왔다.
지구 병원에서 찍은 듯 선명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지난 4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우주비행사들이 엑스레이로 자신의 뼈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는 지구에서 첫 엑스레이 촬영이 이뤄진 지 130년 만의 일”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X는 지난달 31일 민간인 우주비행사 4명을 태운 자사 유인 우주선 ‘드래건’을 발사했다. 이들의 임무는 ‘프램2’로 명명됐는데, 4일간 지구의 북극과 남극 상공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 과정에서 엑스레이 장비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는 실험을 실시해 성공한 것이다. 촬영이 이뤄진 곳은 고도 320㎞ 우주에 떠 있던 드래건 내부였다.
스페이스X가 공개한 엑스레이 사진의 피사체는 한 우주비행사 손가락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좋은 화질이다. 지구의 병원에서 찍은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스페이스X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과학자 등과 공동 연구진을 구성해 엑스레이 장비를 만들었는데, 연구진은 엑스레이 장비의 정확한 크기와 중량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소형화와 경량화에 힘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장롱만 한 덩치에 수백㎏에 이르는, 지구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엑스레이 장비를 우주선에 싣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지구 궤도에 1㎏짜리 물체를 올리려면 로켓 종류에 따라 적게는 2000달러(약 290만원), 많게는 2만달러(약 2900만원)를 써야 하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뼈 건강 약화 ‘우주 여행’ 대비
연구진은 엑스레이 촬영 장비의 조작 방법도 단순화했다. 우주에는 의료 장비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엑스레이 촬영법을 배우기 위해 할애한 시간은 6시간을 넘지 않았다.
연구진은 태양 등 우주의 별에서 쏟아지는 자연적인 방사선이 엑스레이 촬영 과정에서 ‘잡신호’가 될 가능성도 우려했었다. 하지만 사진은 깔끔하게 찍혔다. 우주에서 내리꽂히는 방사선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은 것이다.
우주에서 이뤄진 첫 엑스레이 촬영은 향후 인류가 지구 밖에서 장기 체류를 할 때 신체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해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우주에서는 근육이 위축되고 골격에서 칼슘이 빠져나간다”며 “엑스레이로 뼈 건강을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폐에 액체가 생기거나 복부에 질병이 있는지 등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화성까지 가려면 우주선 안에서 최소 6개월을 무중력 상태로 보내야 한다. 머스크는 이르면 2029년 사람을 화성에 보낼 계획이다. 십수년 안에 건설될 것으로 보이는 달 상주기지의 중력도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이번 엑스레이 촬영은 인류의 활동 영역을 지구 밖으로 확장할 때 필요한 의료 서비스 구축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우주로 가지고 나간 전자·기계 장비의 내부 고장 원인을 밝히는 데에도 엑스레이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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