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확산 위기 안동 시내 가보니
매캐한 연기·잿가루 호흡 힘들어
음식 배달·생필품 배송마저 막혀
5000명 상주 안동병원 대피 준비
경북 안동시 임하면 고곡리의 한 주민이 27일 불에 타 폐허가 된 집을 둘러보고 있다.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24일 안동시 길안면으로 번졌고, 27일 오전 남후면에서 시내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정부는 이날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안동=권현구 기자
경북 안동 주민 권의용(60)씨는 27일 오전 10시29분쯤 ‘남후면 무릉리에서 시내 방면으로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는 재난 문자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나마 시내는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이곳마저 화마가 다가온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었다.
무릉리에서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오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안동병원에서도 동요가 일었다. 경북 최대 규모인 이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 병원 종사자, 외래환자 등 많게는 5000여명이 상주하는 곳이다. 이에 병원 측은 유사시 환자 이송을 위해 차량을 가진 직원들을 대기시켰다. 병원 둘레에는 소방차 6대가 배치됐다.
무릉리와 직선 2㎞ 거리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조종진(49)씨는 “오전에 산불이 시내로 넘어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급박한 상황에 자재를 어떻게 다른 곳으로 옮길지, 불이 덮치면 어떻게 꺼야 할지 우왕좌왕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경북 북부 최대 도시인 안동시는 일상이 멈춘 모습이었다. 시내는 온통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유명 관광지는 폐쇄됐다. 일부 지역은 정전·단수와 함께 통신마저 단절됐다. 안동지역 유·초·중·고·특수학교 96개교 중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곳은 23개교뿐이다. 식당과 카페 등도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김동진(60)씨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가 탁해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며 “시내 식당 문을 닫았고, 열더라도 손님이 없다. 코로나19 당시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전했다.
우정희(62)씨는 “매캐한 연기와 바람에 날리는 잿가루 때문에 제대로 호흡하기 어렵다. 기관지가 나쁜 사람이나 노약자들은 더욱 힘들 것”이라며 “이곳에서 평생을 살고 있지만 최근 사흘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이라고 말했다.
생필품을 사려고 해도 쿠팡 등 배송 업체가 안동지역 배송을 중단해 할 수 없다. 힘들여 문을 연 음식점을 찾아 배달앱으로 주문하면 ‘배달불가’ 메시지가 돌아왔다.
도로망도 고립감이 느껴질 정도로 통제되고 있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 경북 북부를 지나는 도로가 폐쇄된 상태다.
김병상(53)씨는 “아이들 등교, 소소한 외식까지 어렵고 일상이 멈추다 보니 보통의 하루하루가 소중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며 “안동이 육지 속 섬이 돼 버린 것 같아 불안하고 위태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김재산 이임태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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