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깜짝 놀랄 인사를 냈다.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삼성 반도체 수장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에 임명한 것이다. 연중 갑자기 나온 '핀셋 인사'의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 부회장이 메모리 사업부장까지 직접 맡은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부문장과 사업부장을 분리해왔다. 이 틀을 깬 건 30년 넘게 1위를 지킨 삼성 메모리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는 방증과 같았다.
이제 다음달이면 전영현 부회장이 이끈 삼성 반도체가 만 1년이 된다. 궁금한 건 이거다. 1년 사이 삼성 반도체는 달라지고 있느냐다. 반도체 산업에서 1년은 너무 짧은 평가기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 달라지기 위한 분골쇄신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큰 변화는 없는 듯 하다. 위기의 진앙지로 여겨진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여전히 '대기' 중이다. HBM3E가 통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경계현 사장 때와 같이 삼성 메모리에 사인을 하거나 듣기 좋은 인사말만 남기고 있다.
그렇다고 D램이나 낸드플래시에서 희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쟁사는 1b, 1c D램과 같은 차세대 제품을 착착 진행시키는데 반해 '양산의 달인'이었던 삼성은 아직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19일 주주총회에 참석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는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최고경영진이 아닌 한 전체를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외부의 관찰자로서 한 가지 놀라운 대목이 있었다. D램 재설계를 결정한 일이다.
반도체 설계를 바꾼다는 건 터 닦기를 다시 한다는 것과 같다. 단순히 도면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제조 공정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비용 부담은 물론 자원과 시간 소요로 자칫하면 경쟁사와 한 세대 이상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이슈다. 비용, 시간 다 차치해도 기존 것을 뒤집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재설계는 전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강조한 '근원적 경쟁력 복원'를 위한 행보로 읽혔다. 특히 '구원투수'로 투입된 인사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실적이 중요한 국내 환경에서 재검토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임시방편식의 미봉책만 쌓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점에서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눈에 드러난 결과물은 아직이라 해도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했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일까. 수정한 1a D램이 HBM3E에서 제 성능을 발휘, 고무적이란 이야기가 삼성 안팎에서 나온다. (HBM은 D램을 쌓아 만든다.)
삼성 반도체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을 것이다. 메모리에서부터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까지 벌려 놓은 것만큼이나 수습할 일이 많다. 액시노스는 퀄컴과 미디어텍 압박 속에서 어떤 활로를 찾을 것인지, 막대한 투자비에도 기술 난도가 높은 파운드리는 어떻게 삼성만의 경쟁력을 갖출 것인 지 고민이 깊을 것이다. 경영진단이 진행되는 이유일 것이다.
답이 쉽게 나올리 만무하겠으나 '근원적 경쟁력'을 찾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는 점에서 다시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삼성 반도체는 변해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 삼성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삼성 반도체가 국가 경제와 안보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이 때문이다.
윤건일 소재부품부 부장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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